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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직분자들은 위선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야 합니다(눅 20:45-47).

  https://youtu.be/qWlprbZ6Y3A?si=VL0KLBbtPfOxRBA3

"장애인 가족 파국 막으려면..." 자폐 아들 둔 시한부 아빠의 호소

 https://www.chosun.com/national/welfare-medical/2026/07/21/3UM7OEKRNJCOVPRC5UH2C43EXE/


"장애인 가족 파국 막으려면..." 자폐 아들 둔 시한부 아빠의 호소

"부모 사후 중증장애인들 살 집 절실" 재단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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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철씨와 아들 제원씨. /전경철씨 제공
전경철씨와 아들 제원씨. /전경철씨 제공

“대통령님께서 자살 문제에 특히 관심이 많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기업과 정부가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주시면 매년 벌어지는 발달장애인 가족의 ‘자녀 살해 후 자살’이라는 비극을 막을 수 있습니다.”

지난 16일 서울 강동구의 작은 시장 골목길 끝 50년 된 다세대주택에서 만난 전경철(64)씨. 그는 “국가가 최소한 부모의 부재·사망 위기에 처한 중증 장애인들이 살 곳만은 마련해줘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침대 옆에는 수북한 약봉지가 놓여 있었고, 벽엔 아들 제원(27)씨와 함께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전씨는 작년 4월 기대 여명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간암 말기 환자. 얼굴은 야위었고, 배는 복수로 부풀어 올라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간다. 아들 제원씨는 중증 자폐스펙트럼(자폐성 1급) 장애인. 키 176cm, 몸무게 90kg의 건장한 성인이지만, 사회성 연령은 2세 수준에 멈춰 있다. 전씨는 이 아들을 20년 전 아내와 헤어진 뒤 직접 키웠다.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한 동화 속 피터팬 같다며 전씨는 아들이 어릴 때부터 “어이 피터팬” 하고 불렀다고 한다.

지금은 그런 아들과 26년 만에 떨어져 홀로 이 집에 살고 있다. 지난 3월 충북 제천의 한 장애인 거주 시설로 아들을 보냈기 때문이다. 방에 걸린 사진은 아들을 그곳으로 보내기 전날 찍은 부자(父子)의 사진이다. 요즘은 그 사진을 매일 잠자리에 들 때마다 한참 바라보다 잠이 든다고 했다. 전씨는 “내가 다시 그곳에 가서 아들을 만나면 아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을 것 같아 이제는 보고 싶어도 참아보려 한다”고 했다.

복지 매뉴얼은 작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이 생이별은 그가 그토록 간절히 꿈꿔왔던 기적 중 하나다. 작년 4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뒤, 그는 자신이 떠나면 세상에 홀로 남겨질 아들을 위해 전국에 있는 장애인 거주 시설 1000여곳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모두 ‘수용 불가’ 판정을 받았다. 어떤 곳은 “정원이 다 찼다”거나 “돌봐줄 인력이 없다”고 했고, “이 정도 중증은 못 받는다” “정신병원에 보내는 것 말곤 답이 없을 것”이라고 한 곳도 있었다. 두 살 수준 사회성에 때로는 낯선 사람이 다가오면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니 ‘혹여라도 사고가 날까 봐’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지난 16일 서울 강동구 명일골목시장 인근 전경철씨 자택에서 전씨가 아들 제원씨와 찍은 사진 액자를 안고 있다. 전씨는 본지 인터뷰에서 "생이 다하기 전 내 아들과 같은 중증 발달장애인들의 터전을 꼭 만들고 싶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지난 16일 서울 강동구 명일골목시장 인근 전경철씨 자택에서 전씨가 아들 제원씨와 찍은 사진 액자를 안고 있다. 전씨는 본지 인터뷰에서 "생이 다하기 전 내 아들과 같은 중증 발달장애인들의 터전을 꼭 만들고 싶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전씨는 받아달라고 빌어도 보고, 따져 물으며 싸워도 봤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긴급복지지원법과 보건복지부 업무 지침에 따르면 전씨처럼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이 발생한 경우 사회복지시설 이용 등 긴급 지원을 받게 돼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았다. 전씨는 “매뉴얼은 있었지만 그게 다였고, 정작 우리 부자가 살 길은 없었다”면서 “정부의 ‘탈(脫)시설 정책’ 때문에 이제는 제원이 같은 아이를 받기 어렵다고 한 곳들도 있었다”고 했다.

서울시 등 지자체들은 2009년부터 장애인의 지역사회 정착을 지원하는 탈시설 정책을 추진해왔고, 문재인 정부도 2021년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을 발표하며 정책을 전국 단위로 확대했다. 장애인 돌봄을 시설 중심에서 지역사회 자립 중심으로 전환해 장애인 인권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탈시설 이후를 책임질 인력과 체계가 아직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설부터 줄이다 보니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최중증 장애인 가족은 말 그대로 ‘사각지대’가 됐다. 돌봄 부담은 온전히 부모의 몫으로 남았고, 부모가 병들거나 사망하면 이를 대신해줄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들과 함께 떠나려 한 아빠... 그리고 반전

2024년 말 기준 전국 장애인 거주 시설은 1524곳, 거주 인원은 2만6987명이다. 하지만 제원씨 같은 20대 중증 자폐스펙트럼 장애인이 24시간 전문 인력의 지원을 받으며 공동생활을 할 수 있는 그룹홈(장애인 공동생활 가정)은 찾기 어렵다. 대부분은 경증의 50대 이상 고령층 장애인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정부가 2024년 일대일 돌봄까지 제공하는 별도의 최중증 발달장애인 통합 돌봄 서비스를 도입했지만, 24시간 개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은 전국에 340명뿐이다.

전씨는 “나도 이제 아들 손 잡고 같이 세상을 떠나는 방법밖엔 없겠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했다. 병원에서 처음 얘기했던 기대 여명 6개월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였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그저 아들과 함께 살았던 기록을 남기기 위해 작년 11월부터 인터넷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는 “나홀로 아빠가 됐던 아들 7살 무렵부터의 육아일기로 시작해, 고단했지만 행복했던 기억으로 담담하게 쓰기 시작했다”면서 “그런데 쓰다 보니 아들 살 길을 찾는 여정을 보고하는 글이 됐다”고 했다.

아들 제원씨의 어린 시절 모습. /전경철씨 제공
아들 제원씨의 어린 시절 모습. /전경철씨 제공

그때만 해도 그 글이 기적의 씨앗이 될 줄은 몰랐다. 절절한 그의 사연이 점점 알려지면서 지난 3월 한 방송에 소개됐다. 방송을 계기로 시민들의 자발적 후원이 줄을 잇기 시작했고, 지자체는 제원씨가 지낼 곳을 찾아봐 주겠다고 나섰다.

그로부터 보름 뒤 첫 번째 기적이 찾아왔다. 아들을 맡아줄 수 있다는 시설이 나타났다. 다른 중증 발달장애인들과 자연에서 함께 뛰놀 수 있는, 딱 그가 원했던 곳이었다. 얼마 전엔 두 번째 기적이 이뤄졌다. 전씨가 그간 인터넷에 올린 글이 지난달 <안녕, 피터팬>이란 제목의 책으로 출간됐다. 그리고 그는 이제 생이 다하기 전 세 번째 기적을 꿈꾼다.

“부모 죽은 뒤 아이들 살 곳 만들 것”

전씨는 제원씨가 지내고 있는 그룹홈처럼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혼자 남겨질 중증 자폐스펙트럼 장애인들이 안전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요즘 동분서주하고 있다. 전씨는 “생각지도 못했던 이웃들의 뜨거운 응원을 받으면서 세상을 향한 원망이 감사로 바뀌었고, 이 꿈을 꾸게 됐다”며 “세상의 많은 피터팬들이 지낼 수 있는 네버랜드를 만드는 것, 그게 내 마지막 숙명”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특별한 아빠가 아니다”라며 “스무살 넘는 피터팬과 함께 사는 부모라면 모두가 이런 현실에 처해있고, 우리 부자가 겪은 비극을 누군가 또 겪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모인 시민 700여명의 후원금 약정만 1억원 규모를 넘어섰다. 그가 낸 책의 인세도 전액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한 비영리 사회복지법인 ‘피터팬재단’을 만드는 데 보태기로 했다. 전씨 부자의 스토리를 영화로 만들어 보겠다는 제작사도 나타났다. 하지만 당장 재단을 설립하려면 최소한 10억원 가까운 돈이 필요하다고 한다.

SK 등 기업 10여곳에 “도와달라” 제안서

전씨는 “결국 시민들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라, 피터팬재단 설립 제안서를 만들어 SK, CJ, 카카오, KT&G 등 기업 10여 곳에 보내고 답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그는 “지금 나는 아무것도 가질 필요가 없는 사람, 심지어 술도 밥도 먹을 수 없는 사람이고, 아들 또한 지금 있는 저 보금자리만 그대로 있으면 되는 아이”라며 “이런 투명함을 믿고 많은 분이 힘을 보태주시고, 특히 뜻있는 기업의 참여가 이뤄져 중증 발달장애인 가족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 배경 문구는 ‘1962-2027’로 돼 있다. 내년까지는 꼭 힘을 내보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는 “다음 달 중순쯤 지금 응원을 보내주고 있는 모든 시민분들께 중간보고를 할 생각”이라며 “언제 눈을 감을지 모르지만, 그전에 이 꿈을 꼭 이루고 갈 수 있길 바란다. 이 숙제 때문에 지금도 살아있는 것 같고, 나중에 제원이한테 ‘아빠 잘했지?’ 한마디만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했다.

그는 끝으로 보통의 이웃들에게도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우리 피터팬들이 조금 더 소란스러울지라도, 모습이 조금 달라 보일지라도 몇 초의 순간만이라도 따뜻한 부모의 시선으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돌이켜보면, 살면서 가끔씩 만났던 그 따뜻한 시선이 가장 큰 힘이 됐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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