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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과부처럼 자신의 생명과 신뢰를 하나님께 과감하게 던지는 삶을 사십시다.

가난한 과부처럼 자신의 생명과 신뢰를 하나님께 과감하게 던지는 삶을 사십시다 .         “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 누가복음 21:1-4).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21 장 1-4 절 말씀 ( 병행 구절인 마가복음 12 장 41-44 절도 ) 읽은 후 헬라어 성경으로 읽었을 때 제일 첫째로 관심을 갖게 된 헬라어 단어가 있습니다 .   그 이유는 그 단어가 어원이 같은 “βάλλω”( 발로 )(“ 던지다 ”, “ 넣다 ”) 계열의 단어가 총 5 번이나 나오기 때문입니다 [“βάλλοντας”( 발론타스 )(“ 넣는것 ”) (1 절 ), “βάλλουσαν”( 발루산 )(“ 넣는 것 ”)(2 절 ), “ ἔ βαλεν”( 에발렌 )(“ 넣었도다 ”)(3 절 ), “ ἔ βαλον”( 에발론 )(“ 넣어거니와 ”) (4 절 ), “ ἔ βαλεν”( 에발렌 )(“ 넣었느니라 ”)(4 절 )].   이 단어의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   1.        단어의 본질적 의미 : 거칠고 과감한 ‘ 투척 ’   헬라어 ‘βάλλω’ 는 단순히 물건을 조심스럽게 내려놓는 행위가 아닙니다 .   이는 ‘ 힘을 실어 세차게...

가난한 과부처럼 자신의 생명과 신뢰를 하나님께 과감하게 던지는 삶을 사십시다.

가난한 과부처럼 자신의 생명과 신뢰를

하나님께 과감하게 던지는 삶을 사십시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어떤 가난한 과부가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과부는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누가복음 21:1-4).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21 1-4 말씀(병행 구절인 마가복음 12 41-44절도) 읽은 헬라어 성경으로 읽었을 제일 첫째로 관심을 갖게 헬라어 단어가 있습니다.  이유는 단어가 어원이 같은 “βάλλω”(발로)(“던지다”, “넣다”) 계열의 단어가 5번이나 나오기 때문입니다[“βάλλοντας”(발론타스)(“넣는것”) (1), “βάλλουσαν”(발루산)(“넣는 ”)(2), “βαλεν”(에발렌)(“넣었도다”)(3), “βαλον”(에발론)(“넣어거니와”) (4), “βαλεν”(에발렌)(“넣었느니라”)(4)].  단어의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1.       단어의 본질적 의미: 거칠고 과감한투척

 

헬라어 ‘βάλλω’ 단순히 물건을 조심스럽게 내려놓는 행위가 아닙니다.  이는힘을 실어 세차게 던지다(throw, cast)’라는 역동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부자들이 헌금을 넣을 때나 과부가 렙돈을 넣을 때나, 성경은 동일하게 이들이 돈을 헌금함 속에던져 넣었다 표현합니다.

 

당시의 헌금함”[γαζοφυλάκιον(가조필라키온)](1) 놋쇠로 만든 나팔 모양의 투입구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동전을 던져 넣으면 쨍그랑하는 소리가 성전에 울려 퍼졌습니다.

 

[참고: 헌금함[γαζοφυλάκιον(가조필라키온)] 예루살렘 성전 내부에 있던 헌금함또는 헌금함들이 놓여 있던헌금 보관실(성전 창고) 공간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성경 역사와 고고학적 배경을 통해 가조필라키온의 구체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인터넷)

 

a.       구조적 특징: 나팔 모양의 놋쇠

 

소리의 극대화: 당시 성전에 놓인 헌금함은 위쪽은 좁고 아래쪽으로 수록 넓어지는 나팔(Trumpet) 모양의 입구를 가졌으며, 청동(놋쇠)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시각과 청각의 효과: 동전을 넣으면 관을 타고 굴러 내려가며쨍그랑하는 금속성 소리가 성전 내부에 크게 울려 퍼졌습니다.  부자들이 많은 액수의 돈을 던져 넣을 성전 안의 모든 사람이 소리를 들을 있었습니다.

 

b.       위치: 여인의 (Court of the Women)

 

접근성: 헌금함은 성전의 여러 여인의 사방 벽면을 따라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누구나 오는 : 구역은 유대인 남성뿐만 아니라 유대인 여성도 들어올 있는 한계선이었습니다.  따라서 가난한 과부도 제약 없이 와서 헌금할 있는 장소였습니다.

 

13개의 헌금함: 유대교 전승(Mishna) 따르면, 여인의 벽면에는 13개의 나팔 모양 헌금함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헌금함에는 성전세, 의무 제물 대금, 자원 예물 목적이 적힌 명패가 붙어 있었습니다.

 

c.       기능: 성전의 재정 중심지

 

종합 재고 창고: 헌금함은 단순히 동전을 담는 통을 넘어, 모인 돈과 성전의 보물, 성전 유지를 위한 자재를 보관하는 국가적 금고 역할도 겸했습니다. 

예수님의 설교 장소: 예수님은 헌금함 맞은편에 앉아서 사람들을 관찰하셨고( 12:41), 요한복음 8 20절에서는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가조필라키온) 앞에서 하셨으나라고 기록할 만큼 자주 머무시며 말씀을 선포하셨던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본문과의 연결

예수님이 헌금함 맞은편에 앉으셨다는 것은, 단순히 사람들이 돈을 내는 행위뿐만 아니라 나팔관을 통해 들려오는소리의 크기 사람들의태도 고스란히 보고 들으셨음을 의미합니다.

 

부자들은 헌금함에 소리가 나도록 의기양양하게 돈을 던졌을 것이고, 과부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 작은 동전 개를 부끄러운 조용히 넣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헌금함(가조필라키온) 앞에서 세상의 가치(소리의 크기) 뒤집는 천국의 가치(중심의 크기) 가르치셨습니다.]

 

2.       부자들의투척’ (1, 4): 과시와 여유

 

행위의 특징: 부자들에게 ‘βάλλω’(던지다) 자신의 풍족함을 소리로 증명하는과시의 던지기였습니다.

 

구체적 의미: 그들은 쓰고 남은 넉넉한 재정 중에서 일부를 떼어 던졌습니다(4).  그들에게 행위는 삶에 아무런 타격을 주지 않는, 여유롭고 안전한 종교적 의무 이행이었습니다.

 

3.       과부의투척’ (2, 3, 4): 생명과 전부의 던짐

 

예수님께서 주목하신 과부의 ‘βάλλω’(던지다) 부자들의 것과 질적으로 완전히 달랐습니다.

 

행위의 특징: 과부가 던진 렙돈은 놋쇠 헌금함에서 거의 소리가 나지 않는 가벼운 동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녀가가장 많이 던졌다’(βαλεν) 선언하셨습니다.

 

구체적 의미: 4절에서 예수님은 그녀가자신의 모든 소유, 생활비 전부 던졌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생활비의 헬라어 원어는비오스(βίος)’, 생명(life)’입니다.

 

, 과부에게 ‘βάλλω’(던지다) 단순한 헌금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과 미래를 하나님께 통째로 던져 맡기는신앙의 투신이었습니다.

 

요약하자면,

본문에서 5번이나 반복된 ‘βάλλω’(던지다)당신은 하나님께 무엇을 던지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부자들처럼 남는 물질과 시간을 적당히 던지는 삶인지, 아니면 과부처럼 자신의 생명과 신뢰를 하나님께 과감하게 던지는 삶인지를 대조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헌신은액수의 크기 아니라존재를 던지는 태도 있음을 보여주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인터넷).

 

(a)    여기서 저는  부자들이 동전을 헌금함에 넣었을 쨍그랑하는 금속성 소리가 성전 내부에 크게 울려 퍼졌으므로 부자들이 많은 액수의 돈을 던져 넣을 성전 안에 모든 사람이 소리를 들을 있었던 것처럼, 지금도 부자들이 헌금하는 많은 액수의 돈을 교회 안에서 모든 사람이 정도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i)                      2 예루살렘 성전의 나팔 모양 놋쇠 헌금함에서 나던쨍그랑소리가, 오늘날에는 다른 형태의 '보이지 않는 소리' 교회 안에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유발하는 구체적인 문제점은 다음과 같습니다(인터넷):

 

1.       헌금의 본질 변질: '예배'에서 '과시'

 

하나님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헌금은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주권을 고백하는 거룩한 '예배' 행위입니다.

 

문제점: 액수가 대중에게 드러나고 칭송받는 구조가 되면,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아니라 자신의 영향력과 경건을 증명하는 '사회적 과시' 수단으로 전락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마태복음 6 2절에서 외식하는 자들을 향해 "사람에게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 나팔을 부는 "라고 책망하신 모습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2.       교회 공동체성 파괴: 영적 계급화

 

재력이 영적 권력으로: 돈의 액수가 커질 주변에서 알아주고 알아서 대접해 주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교회 안에 세상과 똑같은 '영적 계급 구조' 생깁니다.

 

문제점: 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이 교회의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고 목회자마저 그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 되신 교회가 아니라 재력가들이 주주가 되는 '주식회사'처럼 변질됩니다.

 

3.       가난한 자들의 소외와 위축: 영적 상대적 박탈감

 

과부의 부끄러움: 당시 예루살렘 성전에서 과부가 렙돈을 넣을 , 부자들의 우렁찬 쨍그랑 소리 틈에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는 가벼운 동전 때문에 얼마나 위축되고 부끄러웠겠습니까?

 

문제점: 오늘날 교회 안에서 액수를 강조하거나 주보에 명단과 금액을 대대적으로 공개하는 문화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성도들에게 영적 박탈감과 자격지심을 심어줍니다.  진심 어린 적은 예물을 드리고도 교회 안에서 고개를 숙여야 하는 가슴 아픈 상황이 발생합니다.

 

4.       하나님의 가치관(천국 경제학) 전도

 

액수 vs 중심: 예수님은 헌금의 액수(Quantity) 아니라, 헌금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중심의 태도(Quality) 보셨습니다.  부자는 '남은 것의 일부' 던졌지만, 과부는 '전부' 던졌기 때문입니다.

 

문제점: 교회가 부자들의 액수에만 환호하면, "과부가 부자들보다 많이 넣었다" 하신 예수님의 평가 기준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세상의 물질주의적 가치관이 교회 안으로 그대로 들어와 복음의 능력을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결론적으로,

지금도 교회 안에서 부자들의 헌금 소리가 크게 들리는 이유는, 공동체가 '드리는 자의 중심'보다 '모이는 액수의 크기' 귀를 기울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6:3) 하신 말씀처럼, 헌금의 은밀성과 순수성을 회복하는 것이 오늘날 교회가 당면한 시급한 과제입니다(인터넷).

 

(2)    둘째로, 저는 “πλουσίους”(플루시우스)(“부자들”)(21:1) 단어와 “πενιχρν”(페니크란)(“가난한”)(2)/”πτωχ”( 프토케)(“가난한”)(3) 단어의 대조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졌습니다.

 

(a)    누가복음 21 1~3절에서 의도적으로 배치된 단어들의 대조는, 단순히 경제적 빈부격차를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헬라어 원어의 뉘앙스를 살펴보면, 세상이 바라보는 가치와 예수님이 바라보시는 영적 실체가 어떻게 충돌하는지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단어의 구체적인 의미와 대조의 깊이는 다음과 같습니다(인터넷):

 

1.       πλουσίους (플루시우스) – 물질적 과잉과 요새

 

원어적 의미: '풍부하다', '가득 차다'에서 유래한 단어로, 단순히 돈이 많은 상태를 넘어 재물이 흘러넘쳐 삶의 안전망이 견고한 사람들을 뜻합니다.

 

본문 뉘앙스: 그들은 물질적 풍요 덕분에 성전 안에서도 사회적으로 당당하고 유력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헌금함(가조필라키온) 자신의 풍족함과 경건을 증명하는 무대였습니다.

 

2.       “πενιχρν” (페니크란) – 누가가 바라본 사회적 현실 (2)

 

원어적 의미: '매일 노동해야만 겨우 먹고사는 사람', '빈곤한 ' 뜻합니다.  신약성경 전체에서 오직 구절( 21:2)에만 사용된 특수 단어(Hapax Legomena)입니다.

 

본문 뉘앙스: 의사였던 누가는 과부의 상태를 관찰하며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그녀가 처한 '절박하고 처절한 가난' 객관적으로 묘사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당장 생계가 불가능한 소외 계층의 현실을 날카롭게 포착한 단어입니다.

 

3.       “πτωχὴ” (프토케) – 예수님이 바라본 절대적 파산 (3)

 

원어적 의미: '몸을 웅크리다', '구걸하다'라는 동사에서 유래했습니다.  단순히 가난한(Poor) 수준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볼 능력이 완전히 상실되어 남이 도와주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절대적 파산 상태(Beggar)' 뜻합니다[마태복음 5 3절의 "심령이 가난한(πτωχο) " 같은 단어입니다].

본문 뉘앙스: 누가복음 21 2절에서 누가가 사회적 가난(페니크란) 보았다면, 3절에서 예수님은 그녀를 '절대적 파산자(프토케)' 부르십니다.  그런데 반전은, 예수님이 절대적 파산자를 향해 " 가난한(프토케)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 선언하신 점입니다.

 

단어의 대조가 주는 영적 의미

 

1.       소유의 대조 (전부 vs 일부)

 

부자들(플루시우스) 흘러넘치는 '일부' 드렸기에 헌금 후에도 여전히 부자였습니다.

 

과부(프토케) 자신의 삶을 지탱할 최소한의 생계 수단도 없는 상태에서, 가지고 있던 '전부( 렙돈)' 던졌습니다.

 

2.       신뢰의 대조 (재물 vs 하나님)

 

부자들은 물질이라는 요새 안에서 안전을 누리며 헌금했습니다.  그들의 신뢰 대상은 여전히 재물입니다.

 

과부는 의지할 물질적 요새가 완전히 무너진(프토케) 상태였습니다.  그녀가 렙돈을 던진 것은, 이제 자신의 생존을 오직 하나님께만 의탁하겠다는 절대적 신뢰와 신앙의 모험이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외형적인 풍요(플루시우스) 가려진 부자들의 영적 빈곤을 고발하시고, 외형적인 파산(프토케) 속에서도 하나님께 삶을 통째로 던진 과부의 영적 부요함을 천명하신 것입니다(인터넷).

 

(i)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당장 생계가 불가능한 소외 계층의 과부, 의지할 물질적 요새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에서 그녀가 헌금함에 던진 렙돈”(λεπτά δύο)(렙따 디오)이라는 화폐 단위가 가진 당시의 구체적인 가치는 얼마였을까요?

 

a.       렙돈(Two Lepta) 구체적인 화폐 가치

 

렙돈 당시 통용되던 화폐 가장 가치가 낮은 최소 단위의 유대인 구리 동전이었습니다.  얇다’, ‘작다라는 뜻의 헬라어레프토스’(λεπτός)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노동 가치로 환산: 당시에 일반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1데나리온이었습니다.  1데나리온은 128렙돈에 해당합니다.

 

수학적 계산: 따라서 렙돈(2 Lepta) 하루 품삯의 64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아주 미미한 액수였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하루 최저임금 노동 품삯을 8 ~10 원으로 잡는다면, 렙돈은 겨우 1,200~1,500 정도에 불과한 가치입니다.

 

실물 경제: 돈으로는 당시 시장에서 가장 조각이나 참새 마리조차 사기 힘든, 겨우 생명을 시간 연장할 있을 만한 최소한의 가치였습니다.

 

b.       마가복음( 12:42)과의 흥미로운 차이점

 

누가복음은 단순히 " 렙돈을 넣었다"고만 기록하지만, 마가복음 12 42절은 로마 문화권의 독자들을 위해 가치를 환산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 가난한 과부는 와서 렙돈 고드란트를 넣는지라"(λεπτ δύο, στιν κοδράντης)(12:42).

 

여기서 로마 화폐 단위인고드란트(Quadrans)’ 등장하는데, 이를 통해 성경 저자들의 의도와 메시지의 깊이를 발견할 있습니다.

 

굳이 ' 렙돈' 쪼개서 넣었을까?

 

유대교 성전 규정상 헌금함에는 최소 이상의 동전을 넣어야만 했습니다(최소 헌금 단위가 2렙돈이었습니다).  과부는 정말로 자신이 가진 재산의 '전부' 렙돈이었기에, 법적 최소 기준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생계비 전부를 털어 넣어야만 했던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만약 렙돈만 가지고 있었다면 법적으로 헌금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② ' 렙돈' ' 고드란트' 되는 영적 역설

 

세상의 덧셈 (2 렙돈 = 1 고드란트): 로마인들이나 세상의 눈으로 , 그녀가 바친 돈은 낱개로 쪼개진 조각(2 렙돈)이었으나, 합쳐 보아야 겨우 동전 가치(1 고드란트)밖에 되는 무가치한 액수였습니다.  부자들의 동전 소리에 완전히 묻히는 소리였습니다.

 

예수님의 천국 경제학 (1 고드란트 = 100%): 세상은 그것을 가치 없는 '최소 단위' 보았지만, 예수님은 그것이 과부의 비오스(βίος, 생명)이자전부(100%)’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부자들은 아무리 많이 넣어도 자신의 소유 극히 일부(0.x%) 넣었을 뿐이지만, 과부는 100% 던졌기에 예수님의 계산법으로는 과부가 가장 많이 헌금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묵상 포인트

과부가 바친 ' 렙돈' 액수로는 보잘것없었지만, 렙돈도 남겨두지 않고 모두를 던졌다는 점에서 하나님을 향한 계산 없는, 온전한 신뢰를 보여줍니다(인터넷).

 

·       여기서 저는 하나님을 향한 계산 없는, 온전한 신뢰 문장을 읽었을 계산적인 예수님의 제자 빌립이 생각났습니다: (1) 예수님께서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사람들을 먹이겠느냐하시니까 빌립은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not enough)”(6:5, 7)하고 대답한 것과 (2) 십자가에 박히시기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이 떠날 것과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에 대해 말씀하셨을 빌립이 말은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It will be enough …)”입니다(14:8).  눈에 보이는 증거(하나님) 확실히 보여주면 만족하겠다(Enough) .   또한 잠언 3 5-6 말씀도 생각났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길을 지도하시리라.”  말씀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무엇일까요?

 

-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핵심 교훈은 눈의 계산(Enough) 멈추고, 하나님의 주권을 선택하라 것입니다.  구체적인 교훈 가지입니다(인터넷):

 

1.       계산의 부족함(Not enough)’ 내려놓으라 ( 6:7)

 

예수님이 무리를 먹일 방법을 물으셨을 , 빌립은 즉시 머릿속으로 주판을 튕겼습니다.  200데나리온(노동자 200 품삯)이라는 막대한 돈을 계산해 그가 내린 결론은부족합니다”[οκ ρκοσιν (Not enough)]였습니다.

 

문제점: 빌립의 계산은 정확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계산기에는예수 그리스도라는 상수가 빠져 있었습니다.

 

교훈: 우리는 종종 지식, 재정, 환경을 계산하며이것으론 부족해, 불가능해라고 결론 내립니다.  하지만 천국 경제학은 자원의 유무가 아니라,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는 주님이 곁에 계시는가로 결정됩니다.

 

2.       눈에 보이는 증거(Show us)’ 한계를 깨달으라 ( 14:8)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빌립은아버지를 보여주시면 족하겠나이다”[ρκεῖ (It will be enough)]라고 말합니다.  눈에 확실히 보이는 시각적 증거만 주면 신뢰하겠다는 조건부 신앙입니다.

 

문제점: 빌립은 이미 3 동안 예수님과 동행하며 눈앞에서 수많은 기적을 보았습니다.  오병이어의 현장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눈으로 보는 표적에 의존하는 신앙은 결코 진정한만족(Enough)’ 이르지 못하고 끊임없이 다른 증거를 요구합니다.

 

교훈: 눈에 보이는 상황이 완벽해야만 순종하겠다는 태도는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빌립에게나를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하시며, 이미 주어진 말씀과 예수님의 존재 자체를 신뢰하라고 촉구하셨습니다.

 

3.       명철을 지우고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 3:5-6)

 

모든 인간적 계산의 한계를 돌파하는 열쇠가 바로 잠언 3 5-6절입니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여기서명철 빌립이 했던 인간적인 계산, 상식, 경험적 판단을 뜻합니다.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인정하다 히브리어 원어는야다(יָדַע)’, 친밀한 관계 속에서 온전히 경험하여 아는 것을 말합니다.  , 계산기(명철) 두드리는 대신, 신실하신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라는 뜻입니다.

 

길을 지도하시리라: 계산대로 가던 길을 멈추고 하나님을 신뢰할 , 하나님은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어 과부의 렙돈으로 성경 역사상 가장 위대한 헌신의 이정표를 만드시고,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평탄한 (직선길) 내어 주십니다.

 

결론: 과부와 빌립이 주는 종착지

 

빌립은 200데나리온이라는 큰돈을 계산하고도부족하다(Not enough)” 절망했지만, 가난한 과부는 겨우 2렙돈(1,500) 던지고도 자신의 전부를 가졌으기에 하나님 안에서충분하다(Enough)” 고백한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은 명철로 계산기를 두드리며 겨우 안전을 확보하는 삶이 아니라, 나의 작음(2렙돈) 부족함을 그대로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 분만으로 충분하다(Enough) 고백하며 삶을 던지는(βάλλω) 삶입니다(인터넷).

 

(3)    마지막 셋째로, 저는 “περισσεύοντος”(페리스세우온토스)(“풍족한 중에서”) 단어와 στερήματος”(히스테레마토스)(“가난한 중에”) 단어(21:4) 의미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졌습니다.

 

(a)    단어는 단순한 양적 비교를 넘어, 인간의안전지대 하나님의채우심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단어입니다.  헬라어 원어의 의미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뉘앙스를 인공지능이 분석한 것입니다(인터넷):

 

1.       “περισσεύοντος” (페리스세우온토스) - ‘풍족한 중에서

 

원어적 의미: ‘주변 뜻하는 전치사페리(περί)’에서 유래한 동사 페리스세우오(περισσεύω) 현재 분사 형태입니다.  잔이 가득 차서 물이 사방으로 흘러넘치는 상태, 혹은 쓰고 남은 잉여분(Surplus) 의미합니다.

 

본문 뉘앙스: 부자들이 바친 헌금의 본질을 폭로하는 단어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필요한 물질적 방어벽을 완벽하게 쌓아두었습니다.  그리고 방어벽 위로 흘러넘쳐서 굳이 없어도 삶에 아무런 타격이 없는여유분 떼어 헌금함에 던졌습니다.

 

영적 의미: 이들에게 헌금은 삶의 소유권을 하나님께 이양하는 고백이 아니라, 풍요를 확인하고 증명하는 종교적 취미 생활에 가까웠습니다.

 

2.       στερήματος” (히스테레마토스) – ‘가난한 중에

 

원어적 의미: ‘뒤처지다’, ‘부족하다’, ‘바닥나다라는 뜻의 동사 히스테레오(στερέω)에서 유래한 명사입니다.  단순히 가난한 상태가 아니라, 있어야 필수적인 것조차 없는결핍, 결여, 절대적 빈곤(Deficiency, Lack)’ 뜻합니다.

 

본문 뉘앙스: 과부가 처한 삶의 자리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녀의 삶은 이미 채워져야 것들이 바닥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녀가 결핍의 한가운데서(out of her poverty)’ 자신의 전부를 던졌다고 말씀하십니다.

 

영적 의미: 과부에게 렙돈은 잉여분이 아니라 그녀의 생존 자체였습니다.  결핍 중에서 그것을 던졌다는 것은, 눈앞의 부족함(στέρημα) 스스로 채우려는 인간적 노력을 중단하고, 오직 하나님의 채우심만을 구하는전적 의탁이었습니다.

 

단어의 대조가 주는 궁극적 교훈: 빌립과의 연결

 

앞서 묵상한 요한복음의 빌립 이야기와 단어는 완벽하게 맞물립니다.

 

부자들의 (페리스세우온토스): 그들은 삶을풍족함 상태로 유지하고 싶어 합니다.   계산기(명철) 두드려 안전하다고 느낄 때만 움직입니다.  빌립이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있어도 부족합니다라고 했던 이유는, 예수님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눈앞에 확고한풍족함(Surplus)’ 계산이 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과부의 (히스테레마토스): 그녀는결핍 상태에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명철과 계산으로는 절대 움직일 없는 절망의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결핍을 원망하거나 움켜쥐는 대신, 결핍 자체를 하나님께 던졌습니다.   결핍(στέρημα) 하나님의 풍요(περισσεύω) 경험하는 통로가 됨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결론:

세상은 우리에게먼저 삶을 풍족하게(περισσεύοντος) 채워라.  그래야 안전하고, 남으면 그때 나누고 헌신하라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결핍(στερήματος) 한가운데서도 주님을 인정하며 삶을 던지는 자들을 통해 천국의 기적을 행하십니다(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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