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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는 순종의 열매를 맺은 후에도 “내가 해냈다”가 아니라 “주님이 공급해 주셔서 겨우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겸손히 고백해야 합니다.

  성도는 순종의 열매를 맺은 후에도 “ 내가 해냈다 ” 가 아니라 “ 주님이 공급해 주셔서 겨우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 라고 겸손히 고백해야 합니다 .         “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 누가복음 17:7-10).     (1)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왜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7 장 1-6 절을 말씀하신 후 7-10 절을 말씀하신 것인지 문맥의 흐름과 연관성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   그래서 인공지능에게 물어보았더니 이렇게 답변하였습니다 :   “ 누가복음 17 장 1~6 절에 나오는 실족하게 하지 말 것 , 용서 , 그리고 겨자씨만 한 믿음에 대한 말씀 이후에 왜 갑자기 7~10 절의 ' 무익한 종 ' 비유가 이어지는지는 복음서의 문맥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 예수님의 이 말씀들은 전혀 다른 주제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 제자들의 영적 상태와 태도를 교정하기 위해 긴밀하게 연결된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   요청하신 두 본문 사이의 문맥적 흐름과 연관성을 명확하게 짚어 드리겠습니다 .   1.  ...

第11天:嫉妒的目光 [默想《撒母耳记上》18章9节]

  第 11 天:嫉妒的目光     [ 默想《撒母耳 记 上》 18 章 9 节 ]   “ 从 那日起, 扫罗 就怒 视 大 卫 ”(《撒母耳 记 上》 18 章 9 节 )。   每 当 听到“嫉妒” 这个词 ,我就 会 想起 1992 年 6 月至 7 月 间 在 MBC 电视 台播出的一部同名 电视剧 。 该剧 由崔秀宗和已故的崔 真 实 主演, 讲 述了年 轻 人之 间 那 份 既 纯真 又令人心碎的 爱 情故事。据 说 , 这 部 剧 被 视为当时 情感 剧 的 经 典之作, 它 以 轻 松明快的方式捕捉了通往成熟 爱 情之路上的痛苦、等待 与 美好( 网 络资 料)。我至今仍 隐约记 得 剧 中同名主 题 曲《嫉妒》的歌 词 :“ 你 到底在看 谁 ?我就站在 你 眼前……我不奢求太多,只想要一 个 充 满爱 意的眼神。即便我想表 达 心意, 你 的目光却流露出 别 样 的意味……”( 网 络资 料)。那 时 我 24 岁 , 这 部 剧 及其主 题 曲无疑 触 动 了我 这个 年 轻单 身 汉 的心弦。此刻在撰 写 这 段文字 时 ,我又一次听起了 这 首主 题 曲。 当 然,如今听 来 感 觉 平淡了 许 多, 与当 年的感受大不相同。然而,不可否 认 的事 实 是,“嫉妒” 绝 非一件微不足道的小事。 为 何 这么说 ?因 为 嫉妒足以置人于死地。我深信,嫉妒是撒旦手中一件可怕的武器。   什 么 是嫉妒? 查阅维 基百科,其定 义 如下:“因不 悦 而 觊觎 他人之所有,或无 缘 无故地憎恨 并 试图将 其毁 灭 的心 态 ”( 网 络资 料)。反 复研 读这 一定 义并 反 观 自身,我 真 是不知 该说 什 么 好。因 为 我回想起自己曾 对 基督肢体中的一位弟兄 怀 有毫无 缘 由的憎恨。那人 并 未亏待 过 我,我却无端地 厌恶 他; 尽 管我 并 不想 这样 ,却 发现 自己一次又一次地滋生出恨意。 当 然,我依然能看到自己身上那一面——即 当 别 人 获 得的 赞誉 和 认 可多于我 时 ,我 会 产 生嫉妒或 羡 慕的 倾 向。 这 自然反映了我 内 心的光景。心中滋生的嫉妒或 羡 慕, 归 根 结 底源于 骄 傲。若我在神面前 真 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