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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은 기회입니다. (2): 징검다리 사역을 감당한 바나바처럼 ...

  https://youtu.be/YMvvq9qSuuU?si=jryIy7Y-l8RFXWMq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영적인 ‘나사로’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없는, 영적인나사로들입니다.”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헌데를 핥더라 이에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누가복음 16:19-31).

 

 

(1)    오늘은 본문 누가복음 16 20-21 말씀 중심으로  거지 나사로 땅에서의 삶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a)    저는 20 말씀을 헬라어 성경으로 읽을 헬라어 단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알아보고자 합니다:

 

(i)                      번째 헬라어 단어는 “πτωχς”(프토코스)로서 한국어 성경에는 거지(20)라고 번역이 되있습니다.

 

·       단어가 헬라어 성경에는 20절을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나오는데 단어는 단순한 가난을 넘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타인의 자비에 전적으로 의존해야만 하는 극빈자나 거지 의미합니다.  본문 나사로의 상황을 통해 단어가 가진 깊은 의미 가지입니다(인터넷):

 

1.       절대적인 빈곤과 무능력

 

절대적 빈민: 헬라어에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상태를 뜻하는 단어(πένης, 페네스) 있지만, 성경은 나사로에게 '프토코스'(πτωχς) 사용했습니다.  이는 스스로 생계를 전혀 이어갈 없는 파산 상태의 거지를 뜻합니다.

 

육체적 무력함: 본문에서 나사로는 부자의 대문 앞에버려진 누워 있었습니다.  스스로 움직여 구걸할 힘조차 없는 비참한 상태였습니다.

 

2.       전적인 의존성

 

타인의 자비: '프토코스'(πτωχς) 어원적으로 '웅크리다', '두려워 떨다'라는 뜻에서 유래했습니다.

 

구걸하는 :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려 했던 나사로의 모습처럼, 오직 타인의 도움과 시선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상태를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3.       영적 가난함과의 연결 (신앙적 의미)

 

하나님만 바라보는 : 마태복음 5 3절의 "심령이 가난한(πτωχς) " 쓰인 단어와 같습니다.

 

전적 의지: 나사로라는 이름의 뜻은하나님이 도우신다입니다.  세상의 어떤 물질이나 스스로의 힘도 의지할 없어,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구원만을 전적으로 바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영적 상태를 대변합니다.

              

-            저는 “πτωχς”(프토코스)(거지) 단어가 마태복음 5 3절의 심령이 가난한[πτωχς (프로코스)] 쓰였다는 사실과 나사로라는 이름의 뜻은하나님이 도우신다라는 사실을 묵상할 요한복음 11장에 예수님께서 살리신 죽은 나사로 생각났습니다.

 

1.       이름의 성취: 나사로(오늘 본문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나사로와 요한복음 11장에 나오는 나사로) 통해 완성되는하나님의 도우심

 

나사로”(Lazarus) 히브리어 엘아자르”(Eleazar)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하나님이 도우신다라는 뜻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나사로는 세상의 시선으로는 가장 버림받은 자처럼 보였으나, 결국 이름 그대로 하나님의 전적인 도우심을 입은 주인공들이 되었습니다.  다만 도우심이 성취되는 방식과 차원이 다릅니다.

 

    누가복음의 나사로 (내세적·영원한 구원의 도우심)

 

땅에서는 부자의 대문 앞에서 헌데를 앓으며 개들이 상처를 핥는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세상은 그를 돕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 그는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낙원) 들어갑니다.  세상에서 얻지 못한 완전한 안식과 위로를 하나님께 직접 받게 됩니다.

 

메시지: 하나님의 도우심은 땅의 물질적 풍요나 성공에 국한되지 않으며, 죽음을 넘어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요한복음의 나사로 (역사적·표적을 통한 도우심)

 

그는 병들어 죽었고, 이미 무덤에 갇혀 썩은 냄새가 나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humanly) 도우심의 소망이 완전히 끊어진 때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시며 무덤 문을 열고 그를 살려내셨습니다.

 

메시지: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 11:25)이심을 역사적 시공간 속에서 증명하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인간의 마지막 한계인죽음마저도 깨뜨린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종합] 사건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육체의 죽음을 지배하는 권능(요한복음) 뿐만 아니라, 죽음 이후 영원한 삶을 보장하는 사랑(누가복음)임을 입체적으로 완성하여 보여줍니다.

 

2.       영적 죽음과 프토코스(πτωχς): 무덤 나사로와 심령이 가난한

 

앞서 묵상하신 대로, ‘프토코스(πτωχς)’ 스스로를 구원할 힘이 0% 없는절대적 파산 상태 뜻합니다.   개념은 요한복음 11장의 죽은 나사로의 상태와 영적으로 완벽하게 맞아떨어집니다.

 

무덤 나사로의 상태 (영적 프토코스)

 

죽은 나흘이 나사로는 수의에 묶인 무덤 속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살려달라" 부르짖을 혀도 없었고, 무덤 문을 열고 나올 손발의 힘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죄로 인해 영적으로 죽은 인간의 상태[“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 2:1)]입니다.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도, 구원을 요청할 수도 없는 철저한프토코스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음성(은혜)으로만 일어남

 

절대적 무능력의 현장에 예수님의 주권적인 음성이 선포됩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11:43)

 

나사로가 살아난 것은 그의 의지나 노력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과 은혜가 그를 살려낸 것입니다.

 

마태복음 5 3절과의 연결

 

심령이 가난한(프토코스)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영적으로 자신이 무덤 시체처럼 아무것도 없는프토코스임을 깨닫고 깨어지는 , 하나님, 저는 스스로를 구원할 없는 영적 파산자입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음성) 필요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자가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자에게 천국(생명) 선물로 주십니다.

 

3.       예수님의 의도: 나사로라는 이름을 사용하셨을까?

 

예수님이 복음서 전체에서 비유를 말씀하실 , 실제 인물의 이름을 지정하여 부르신 경우는 누가복음 16장의 '나사로' 유일합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1장에서는 실제로 이름을 가진 인물을 죽음에서 살리십니다.  여기에는 유대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정교하고 의도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기득권층(바리새인과 부자들) 가치관을 뒤집으심

 

당시 유대 사회(특히 바리새인들)부유함 = 하나님의 축복’, ‘가난과 질병 = 하나님의 저주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비유 속에서 이름도 없이 사라진 '부자' 달리, 거지를 '나사로(하나님이 도우시는 )'라고 부르심으로써 세상이 천대하는 자가 오히려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자임을 선포하셨습니다.  외모와 물질로 사람을 판단하던 유대인들의 영적 맹점을 강하게 찌르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6 비유의 예언적 성취 (요한복음 11)

 

누가복음 16 결론에서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형제들에게 보내어 경고하게 해달라" 부탁합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단호하게 답합니다: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는 이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16:31).

 

그런데 요한복음 11장에서 실제로 나사로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비유가 눈앞의 현실이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완악함을 폭로함


진짜로 나사로가 살아났을 ,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예수님과 나사로를 죽이려고 모의했습니다( 12:10).

 

예수님은 나사로라는 이름을 비유와 실제 사건에 동시에 사용하심으로써,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 인간의 완악함과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역사 앞에 그대로 폭로하셨습니다.

 

        결론을 맺으면서,

누가복음의 나사로를 통해 우리가 땅에서 바라보아야 영원한 천국과 영적 가난함을 배우게 하시고, 요한복음의 나사로를 통해 영적으로 파산[“πτωχς”(프토코스)]하여 무덤에 갇힌 우리를 말씀 한마디로 살려내시는 예수님의 부활 권능을 보게 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없는, 영적인나사로들입니다(인터넷).

 

(ii)                    번째 헬라어 단어는 “ελκωμένος”(헤일코메노스)로서 한국어 성경에는 헌테 투성이로(20)라고 번역했습니다.

 

·       단어는 나사로의 처참한 육체적 상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핵심 단어입니다.  단어가 가진 원어적 의미와 안에 담긴 영적 메시지를 인공지능이 가지로 나누어 정리해 주었습니다(인터넷):

 

1.       원어적 의미: 온몸이 상처와 고름으로 뒤덮인 상태

 

의학적 용어: 단어는궤양이 생기다’, ‘종기가 나다라는 뜻의 헬라어 동사헬코오(λκόω)’ 완료 수동태 분사형입니다.  당시 의사였던 누가는 나사로의 피부가 단순한 상처를 넘어, 온몸이 악성 종기와 궤양으로 뒤덮여 피고름이 흐르는 상태였음을 의학적 시선으로 정확히 묘사했습니다.

 

지속적인 고통: 완료 형태의 분사가 쓰였다는 것은 종기와 고통이 어쩌다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어 전체를 잠식한 상태였음을 뜻합니다.

 

2.       사회적·종교적 의미: ‘저주받은 라는 낙인

 

부정함의 상징: 당시 유대 사회에서 온몸에 진물이 흐르는 악성 피부병은 레위기 율법에 따라부정한 으로 여겨졌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보며하나님께 저주와 심판을 받은 죄인이라며 손가락질하고 멀리했을 것입니다.

 

철저한 소외: 그는 부자의 대문 앞에 버려졌으나 누구의 돌봄도 받지 못했습니다.  오직 개들이 와서 상처를 핥을 뿐이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개는 부정한 짐승이었으므로, 부정한 짐승이 부정한 인간의 상처를 핥는 모습은 나사로가 사회적·종교적으로 가장 밑바닥까지 추락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3.       프토코스’(πτωχς) 연결되는 영적 의미: 죄로 오염된 영혼의 상태

 

영적 영양실조와 비참함: 앞서 묵상한프토코스(절대적 파산)’ 그의 경제적·환경적 무능력을 뜻한다면, ‘헤일코메노스(헌데 투성이)’ 그의 육체적·외면적 파산을 뜻합니다.  겉과 속이 모두 완전히 무너진 상태입니다.

 

우리의 영적 자화상: 이는 이사야서 1 6절에서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죄악된 상태를 향해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라고 탄식한 전인적 부패의 상태와 일맥상통합니다.  ,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 죄로 인해 영혼이 피고름으로 뒤덮인 인간의 비참한 본질을 시각화하여 보여주는 것입니다.


결국 나사로는 세상의 눈으로 보기에 겉은 헌데 투성이(헤일코메노스), 속은 아무것도 없는 거지(프토코스)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처럼하나님의 도우심 임했을 , 그의 영혼은 가장 깨끗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됩니다.

 

-            저는 나사로의 처참한 육체적 상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핵심 단어인 “ελκωμένος”(헤일코메노스)(헌데 투성이) 나사로의 피부가 단순한 상처를 넘어, 온몸이 악성 종기와 궤양으로 뒤덮여 피고름이 흐르는 상태라는 것을 읽을 성경 욥기서에 나오는 욥이 생각났습니다: “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 욥이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나사로나 욥은 모두 외적으로는 하나님께 저주받은 것처럼 보였으나, 내면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는프토코스(영적 가난함)’ 상태였고, 결국에는나사로(하나님이 도우신다)’ 은혜를 입었다는 점에서 완벽한 평행이론을 이룹니다.

 

나사로의헌데 투성이(헤일코메노스)’ 욥의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 단순한 질병의 기록이 아닙니다.  이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의인의 고난’, 그리고 고난의 절정이자 완성인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 가리키는 거대한 영적 이정표입니다.

 

사람의 육체적 고통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고난과 긴밀하게 연결되는지 인공지능이 가지 영적 주제로 풀어 설명해줬습니다(인터넷):

 

a.       전인적인 파괴와 철저한 외면 (고난의 강도)

 

나사로와 욥의 고난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는전인적인 파괴였습니다.   비참함은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당하신 육체적·정신적 고통과 완벽히 겹쳐집니다.

 

나사로와 : 욥은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질그릇 조각으로 몸을 긁었고, 나사로는 온몸이 헌데 투성이가 되어 개들이 상처를 핥았습니다.  이들은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가족과 이웃(부자)에게 철저히 버림받는 외로움을 겪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 예수님은 머리에 가시관을 쓰셨고, 등은 가죽 채찍에 찢기셨으며, 손과 발은 거친 못에 뚫리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모습을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뿐” ( 1:6)이라 예언했습니다.  예수님 역시 제자들에게 배신당하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잠시 외면당하는 철저한 버림받음을 경험하셨습니다.

 

연결성: 나사로와 욥이 겪은 온몸의 상처는, 인간이 죄로 인해 겪을 있는 가장 극심한 고통의 자리에 예수님께서 친히 내려오셔서 모든 아픔을 육체로 체율(공감)하셨음을 미리 보여주는 예표입니다.

 

b.       저주받은 라는 사회적 낙인과 수치 (고난의 성격)

 

당시 문화권에서 온몸에 진물이 흐르는 악성 종기는 단순한 아픔이 아니라, ‘하나님께 천벌을 받은 증거 여겨졌습니다.

 

나사로와 : 욥의 친구들은 그를 향해 때문에 벌을 받는 이라며 정죄했습니다.  부자의 대문 앞에 누워 있던 나사로 역시 지나가는 유대인들에게저주받은 죄인이라는 수치스러운 시선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 예수님은 유대 율법상 가장 저주의 상징인나무(십자가)’ 매달려 죽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십자가 밑에서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 53:4)라며 조롱했습니다.  죄가 전혀 없으신 분이 세상에서 가장 부정한 자의 모습으로 죽으신 것입니다.

 

연결성: 예수님은 욥과 나사로가 당했던 억울한저주의 낙인수치 십자가에서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그분 스스로가 가장 비참한헌데 투성이 저주를 받으심으로써, 도리어 저주 아래 있던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c.       영적 가난함(프토코스) 통한 영광스러운 반전 (고난의 결말)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는 이들이 고난 속에서 보여준영적 태도 그에 따른반전 있습니다.

 

나사로와 : 이들은 고난의 한복판에서 세상을 원망하거나 스스로를 구원하려 침묵을 깨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는프토코스(절대적 가난·의존)’ 상태로 머물렀습니다.   결과 욥은 갑절의 회복을 입었고,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서 영원한 위로를 얻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 예수님은 십자가라는 극심한 고통의 현장에서도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과 깎는 앞에서 잠잠한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셨도다”( 53:7) 하신 말씀처럼 잠잠히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셨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시고 전적으로 아버지의 손에 영혼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가장 높은 영광의 자리에 오르셨습니다.

 

연결성: 욥과 나사로의 고난 끝에 찾아온 영광은, 그리스도의 고난 뒤에 부활과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미리 맛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묵상 결론:

욥의 종기와 나사로의 헌데는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53:5)라는 복음의 핵심으로 수렴됩니다.

 

예수님은 욥처럼 까닭 없는 고난을 당하셨고, 나사로처럼 온몸이 찢기어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상처와 피고름으로 뒤덮인헌데 투성이이자거지(프토코스)’였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우리 대신 비참한 자리에 주셨기에, 이제 우리는 영적인나사로(하나님이 도우시는 )’ 되어 하늘의 위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b)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6 21절에서 거지 나사로가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베불리려 였다는 말씀을 묵상할 예수님께서 귀신 들린 딸을 고쳐달라며 애원하는 가나안 여자(15:22)[수로보니게 족속의 헬라인(7:26)] 여인을 시험하시고자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말씀하셨을 여자가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15:27)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i)                      본문은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이라는 공통된 시각적 배경을 통해, 영적인 '프토코스(절대적 파산자)'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갈망하고 구해야 하는지를 완벽하게 설명해 줍니다(인터넷):

 

1.       자신의 완벽한 영적 파산을 인정하며 구해야 합니다(철저한 무장해제).

 

본문의 배경이 되는 아래(바닥)’ 인간의 (righteousness) 자존심, 세상적인 조건이 완벽하게 깨어지고 무력화되는 자리입니다.

 

본문의 상황: 거지 나사로는 부자의 대문 바닥에 웅크려 누워 있었고,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자신을 위치로 낮추었습니다.

 

갈망의 방식: 영적인 프토코스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내가 이만큼 헌신했고, 이런 직분을 가졌고, 착하게 살았다 영적 채권자의 태도를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나사로처럼 세상적으로 완전히 파산한 자의 모습으로, 가나안 여인처럼주님, 저는 힘으로 의를 이룰 없는 영적 죄인이자 파산자입니다라는 철저한 자기 부인과 무장해제를 고백하며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2.       부스러기라도 생명임을 믿고 절박하게 매달려야 합니다(은혜의 절대성).

 

위에 차려진 화려한 메인 요리가 아니라 식탁 밑으로 떨어지는 작은 조각, 부스러기 바라보는 시선에는 은혜를 향한 절박함이 담겨 있습니다.

 

본문의 상황: 나사로에게는 부스러기가 목숨을 연명할 유일한 끈이었고, 가나안 여인에게는 주님의 말씀 한마디(부스러기) 딸을 살릴 유일한 치유의 광선이었습니다.

 

갈망의 방식: 프토코스의 갈망은은혜를 주시면 좋고, 주시면 그만이라는 식의 취미 생활이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가 없으면 나는 오늘 당장 영적으로 굶어 죽는 시체와 같습니다라는 절박함입니다.  남들이 보기엔 하찮아 보이는 말씀 구절, 주님이 지나가듯 베푸시는 세밀한 자비(부스러기)일지라도, 그것이 영혼을 살릴 유일한 생명줄임을 알고 힘을 다해 매달리는 태도입니다.

 

3.       주인의 선하심과 풍성함을 끝까지 신뢰해야 합니다(믿음의 시선).

 

주인의 바라본다는 것은 위에 있는 풍성한 공급자, 주인을 신뢰한다는 뜻입니다.

 

본문의 상황: 가나안 여인은 주님이 자신을 거절하는 듯한 시험의 말씀을 하셨을 때도, 낙심하여 도망치지 않고주인의 이라는 표현을 쓰며 주님의 감추어진 자비와 풍성함을 끝까지 신뢰했습니다.  나사로 역시 이름 그대로하나님이 도우실 신뢰하며 세상의 부자가 아닌 하늘 주인의 상을 바라보았습니다.

 

갈망의 방식: 참된 프토코스는 눈앞의 상황이 거절처럼 보이고 삶의 고난이 계속될지라도, 우리 주님의 식탁은 언제나 풍성하며 그분은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선한 주인이심을 끝까지 믿는 것입니다.   처지는 바닥일지라도 시선은 항상 위의 주인을 향해 고정하는 믿음의 갈망입니다.

 

묵상 결론:

결국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구하는 프토코스의 갈망이란, 나의 비참한 현실(바닥) 정직하게 인정하되, 주인의 풍성한 자비( ) 절박하게 신뢰하며 엎드리는 믿음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자기 의를 버리고 오직 주님의 자비만을 구하는 심령이 가난한 (프토코스)들에게, 부스러기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천국) 전체를 상으로 넘치도록 차려주시는 분이십니다(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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