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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모든 주권을 하나님께 기꺼이 이양하고 맡기는 '위탁'의 버림으로 성숙해져야 합니다.”

  “ 내 삶의 모든 주권을 하나님께 기꺼이 이양하고 맡기는 ' 위탁 ' 의 버림으로 성숙해져야 합니다 .”       “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 누가복음 18:28-30).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8 장 28-30 절 말씀을 한국어 성경으로 읽었을 때 유사한 말씀이 다른 복음서에 어디에 나오는지 궁금해서 찾아보았습니다 : 마태복음 19 장 27-30 절과 마가복음 10 장 28-31 절 .     (a)    세 본문을 비교해 볼 때 첫번째 흥미로운 점은 베드로의 질문을 비교해 볼 때 마태복음만 “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 마 19:27) 라고 말한 것입니다 .   왜 마태복음만 이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것일까요 ?   (i)                   “ 마태복음 19 장 27 절에서 베드로가 ‘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 라고 구체적인 보상을 묻는 장면은 마태복음만의 매우 중요한 신학적 , 역사적 특징을 담고 있습니다 .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단순히 ‘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 라는 고백 형식으로만 기록한 반면 ,...

“내 삶의 모든 주권을 하나님께 기꺼이 이양하고 맡기는 '위탁'의 버림으로 성숙해져야 합니다.”

 

삶의 모든 주권을 하나님께 기꺼이 이양하고 맡기는 '위탁' 버림으로 성숙해져야 합니다.”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8:28-30).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8 28-30 말씀을 한국어 성경으로 읽었을 유사한 말씀이 다른 복음서에 어디에 나오는지 궁금해서 찾아보았습니다: 마태복음 19 27-30절과 마가복음 10 28-31. 

 

(a)   본문을 비교해 첫번째 흥미로운 점은 베드로의 질문을 비교해 마태복음만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19:27)라고 말한 것입니다.  마태복음만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것일까요?

 

(i)                  마태복음 19 27절에서 베드로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라고 구체적인 보상을 묻는 장면은 마태복음만의 매우 중요한 신학적, 역사적 특징을 담고 있습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단순히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라는 고백 형식으로만 기록한 반면, 마태가 질문을 생생하게 기록한 이유는 크게 가지로 분석할 있습니다”(인터넷):

 

1.      마태복음의 독자인 '유대인'들의 사상 반영 (행위와 보상)

 

마태복음은 일차적으로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쓰인 복음서입니다.  당시 유대교 사상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철저히 지키면 그에 합당한 보상이 따른다' 인과응보적 신앙(보상 신학) 깊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부자 청년과의 대조: 바로 사건에서 부자 청년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지만, 재물이 많아 결국 모든 것을 버리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19:16-22).

 

유대인식 논리: 베드로는 유대인 특유의 율법적·계약적 사고방식에 따라 생각한 것입니다.  ' 부자는 버리지 못해 영생을 놓쳤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정말로 버리고 주를 따랐으니, 계약상 우리가 받게 정당한 (보상) 무엇입니까?'라고 당당히 질문한 것입니다.

 

2.      베드로의 미성숙함과 '공로 사상' 폭로

 

마태는 제자들의 영적 연약함과 미성숙함을 숨기지 않고 정직하게 기록했습니다.

 

질문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 이면에 여전히 '내가 이만큼 희생했으니 이만큼 대가를 받아야 한다' 공로주의(기복주의) 생각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질문에 대해 12보좌의 권세를 약속하시면서도( 19:28), 곧바로 "먼저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자로서 먼저 자가 많으니라"( 19:30) 경고하십니다.

 

이어지는 마태복음 20장에는 오직 마태복음에만 나오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 등장합니다.  새벽 일찍 자나 끝나기 직전에 자나 똑같이 1데나리온을 주는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보상이 인간의 '공로' 아닌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 주어지는 것임을 베드로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3.      '왕이신 예수' '교회' 통치 구조 강조

 

마태복음의 핵심 주제는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나라(천국)'입니다.

 

베드로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마태복음에서만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19:28) 거대한 우주적 왕권과 통치의 보상을 선언하실 있었습니다.

 

마태는 질문과 답변을 통해,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제자 공동체(장차 세워질 교회) 하나님 나라에서 얼마나 존귀한 권세를 얻게 되는지 왕의 선언을 통해 분명하게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요약하자면,

마태복음에만 질문이 기록된 이유는, 유대인들의 보상 개념을 배경으로 삼아 인간의 공로주의적 성향을 들추어내는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보상은 인간의 계산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와 영광스러운 권세임을 극적으로 대조하여 가르치기 위함입니다(인터넷).

 

·         여기서 저는 지금도 교회 안에는 "내가 이만큼 희생했으니 이만큼 대가를 받아야 한다" 공로주의(기복주의) 생각이 만연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원인이 뭘까요?

 

교인들이 마태복음 19장의 베드로와 같은 영적 함정에 깊이 빠지게 되는 원인은 인간의 본성적인 심리와 종교적·문화적 배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핵심 원인을 4가지로 정리해 드립니다.

 

1.      주고받는 거래(Give and Take) 익숙한 인간의 타락한 본성

 

인간은 나면서부터 자본주의적·세상적 가치관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세상은 철저히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는' 인과응보와 거래의 법칙으로 움직입니다.

 

세상 법칙의 투사: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도 세상의 비즈니스처럼 생각합니다.  내가 이만큼 정성을 쏟았으니, 하나님도 그에 상응하는 리턴(보상) 주셔야 공평하다 세상적 본성이 신앙 안으로 그대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내가 하나님보다 우위에 서서 하나님을 조종하려는 타락한 죄성에서 비롯됩니다.

 

2.      한국 교회 역사 '무속 신앙(샤머니즘)'과의 혼합

 

특히 한국 교회의 맥락에서 기복주의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오랜 세월 한국인의 무의식에 자리 잡은 무속 신앙(샤머니즘) 영향이 큽니다.

 

치성(致誠) 중심의 종교관: 샤머니즘은 '신에게 인간이 정성을 얼마나 들이느냐(지성이면 감천)' 따라 복을 받거나 화를 피한다는 구조를 가집니다.  복음이 한국에 들어올 , 샤머니즘적 구조가 기독교의 '기도, 헌금, 봉사'라는 종교적 행위와 결합하면서 정성을 바쳐 복을 타내자 기복주의로 변질된 경우가 많습니다.

 

3.      성공주의·성장주의 마케팅을 펼친 교회 지도자들의 책임

 

소위 '예수 믿고 받아 부자 되고 성공하자' 번영 신학(Prosperity Gospel) 과거 한국 교회의 폭발적 부흥기에 강단을 지배했습니다.

 

인과관계의 왜곡: 많은 설교자가 성도들의 헌신을 이끌어내기 위해 성경의 복을 물질적·세상적 성공으로 축소하여 가르쳤습니다.  십일조를 잘하면 창고가 넘친다’, ‘교회 봉사를 열심히 하면 자녀가 복을 받는다 식의 인과론적 설교가 반복되면서, 성도들의 뇌리에 은혜가 아닌 '투자 체계'로서의 공로주의가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4.      행위와 은혜의 심각한 불균형 (복음의 본질 상실)

 

구원은 '오직 은혜(Sola Gratia)' 받았다고 고백하지만, 구원 이후의 (성화의 과정) ' 행위와 열심'으로 채워야 한다고 착각하는 이원론적 신앙 때문입니다.

 

은혜의 망각: 내가 구원받은 자체가 빚진 자의 심정으로 평생 감사해도 모자란 '자격 없는 자에게 주신 선물'임을 잊어버릴 공로주의가 싹니다.  은혜를 망각하면 나의 작은 희생이 거대한 '공로' 보이기 시작하고, 결국 타인을 정죄하거나 하나님께 서운함을 느끼는 영적 병리 현상으로 이어집니다.

 

결론적으로

베드로가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을 , 예수님은 공로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은혜의 주권을 다룬 '포도원 품꾼의 비유' 주셨습니다.  현대 교회 역시 '값없는 은혜의 복음' 잃어버리고 세상의 효율성과 인과론을 따라갈 , 언제든 기복주의 종교로 전락하게 됩니다”(인터넷).

 

(b)   본문(18:28-30; 19:27-30; 10:28-31) 비교해 번째 흥미로운 점은 예수님이 약속하신 보상의 표현 방식에 약각의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인터넷):

 

1.      현세의 보상 약속 ( 땅에서 받는 )

 

누가복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가족을 버린 자는 현세에서 여러 배의 위로와 보상을 받게 됩니다.

 

마가복음: 주와 복음을 위해 헌신한 자는 현세에서 집과 가족과 전토를 배나 받되, 신앙에 따르는 박해를 겸하여 받습니다.

 

마태복음: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부모나 자식을 버린 자마다 땅에서 여러 배의 보상(영적 가족과 공동체의 풍요) 받게 됩니다.

 

a.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공통으로 약속한 현세의 보상(여러 , ) 문자 그대로의 물질적 대박이나 부자가 된다는 기복주의적 약속이 아닙니다.   말씀은 복음을 위해 대가를 지불한 자들에게 주어지는하나님 나라의 신비와 풍요 뜻하며, 다음 가지 핵심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1.      관계의 확장: '영적 가족' 탄생

 

주님을 따르기 위해 혈연관계(부모, 형제, 자녀) 내려놓거나 소외당한 자들에게,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피보다 진한 새로운 가족을 주십니다.

 

예수 중심의 가족: 마가복음 3 35절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셨습니다.

 

교회 공동체 공동소유: 복음 때문에 고향을 떠난 이들이 가는 곳마다 믿음의 형제, 자매를 만나고, 서로의 집과 전토를 내어주며 환대하는 우주적 교회 공동체의 풍요를 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2.      소유의 전환: 자족함이 주는 '영적 풍요'

 

실제 제자들은 물질적으로 부유해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 배의 집과 전토' 소유권의 개념이 아니라 사용권과 누림의 개념입니다.

 

뜻이 아닌 주님의 뜻대로: 소유를 움켜쥐던 삶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를 최우선으로 구하면, 하나님이 삶의 모든 필요를 책임지십니다( 6:33).

 

탐욕에서 해방된 만족: 물질의 노예에서 벗어나 사도 바울처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4:11)라고 고백하는 상태입니다.  세상 부자는 가져도 목마르지만, 제자는 가진 것이 없어도 모든 것을 가진 자처럼 풍요를 누립니다.

 

3.      고난의 동반: '박해' 통한 단련

 

마가복음은 현세의 보상을 언급하면서 박해를 겸하여 받고라는 단서를 절대 빼놓지 않습니다.

 

가짜 복음의 차단: 기독교의 복이 세상의 성공 신화와 철저히 다름을 보여줍니다.  현세의 복은 고난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세상과의 구별: 제자가 세상에서 박해를 받는다는 자체가 역설적으로 그가 하나님께 속했으며, 현세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복의 증거가 됩니다.

 

요약하자면

현세의 보상은 세상 소유의 양적 증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안에서 누리는 신령한 질적 변화입니다.   것을 포기할 비로소 열리는 영적 가족의 따뜻함,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대한 절대적 신뢰, 그리고 고난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하늘의 평안을 땅에서 미리 맛보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인터넷).

 

2.      내세의 보상 약속 (장차 세대에서 받는 )

 

마태복음 (특별 보상): 세상이 새롭게 (예수님 재림 ),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영광의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는 권세를 얻게 됩니다.

 

공통 약속: 모든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땅의 삶이 끝난 , 장차 영원한 세상에서 반드시 '영생(영원한 생명)' 상속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인터넷).

 

a.      복음서가 약속한 내세의 보상 약속(영생과 열두 보좌의 심판 권세) 땅에서의 눈물과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으며, 최종적인 승리가 보장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궁극적인 구원의 완성'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약속은 단순히 죽어서 천국에 간다는 위로를 넘어, 다음 가지 차원의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      존재의 변화: '영생(영원한 생명)' 상속

 

모든 복음서가 공통으로 약속한 '영생' 단순히 시간적으로 영원히 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완전한 연합: 현세에서는 희미하게 보였던 하나님을 내세에서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듯 완벽하게 마주하며, 그분의 영광과 기쁨에 영원히 참여하게 됩니다.

 

결핍과 고통의 종말: 땅에서 복음을 위해 치렀던 모든 희생, 눈물, 아픔, 박해가 완전히 씻겨 나가고, 죄와 사망이 이상 권세를 부리지 못하는 완전한 평안의 상태로 들어감을 뜻합니다.

 

2.      신분의 변화: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통치와 심판의 권세'

 

마태복음이 강조한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약속은, 주님을 위해 세상의 권력과 명예를 포기한 제자들의 신분이 어떻게 뒤바뀌는지를 보여줍니다.

 

낮아짐에서 높아짐으로: 땅에서 제자들은 세상 법정에 서서 심판을 받고, 조롱당하며, 낮아진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새롭게 , 그들은 도리어 '심판을 받는 '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노릇 하며 세상을 심판하는 통치자' 신분이 완전히 역전됩니다.


교회의 영광스러운 승리: 이는 열두 제자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성도(교회) 장차 우주 앞에서 받게 영광과 권세를 대변합니다(고전 6:2).

 

3.      소망의 : 박해를 이기는 '종말론적 위로'

 

내세의 보상은 현세의 고난을 견디게 하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 됩니다.

 

희생의 가치 인정: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을 위해 포기한 것들을 하나도 잊지 않으시고, 장차 세대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방식으로 갚아주십니다.

 

현재를 살아내는 : 제자들은 내세에 받을 확실한 영광의 보상이 있음을 믿었기에, 현세에서 찾아오는 핍박과 순교의 자리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완주할 있었습니다.

 

현세와 내세의 보상 총요약

 

현세의 보상은 고난(박해)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영적 가족, 자족함) '미리 맛보는 (Foretaste)'입니다.

 

내세의 보상은 주님이 재림하셔서 우주를 새롭게 하실 , 풍성함을 '완전하고 영원하게 누리는 (Full Possession)'입니다”(인터넷).

 

(2)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8 28-30 말씀을 한국어 성경으로 읽은 헬라어 성경으로 읽었을 베드로가 사용한 φέντες”(아펜테스)(“버리고”) 단어(28)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φκεν”(아페켄)(“버런”) 단어의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베드로가 생각한 버림(φέντες) 예수님이 바라보신 버림(φκεν) 차이가 있을까요?

 

(a)   단어의 뿌리인 '아피에미(φίημι)' 단순히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듯 '내팽개치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단어는 "소유권을 포기하다", "뒤에 남겨두고 떠나다", "자유롭게 놓아주다(해방하다)"라는 깊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인터넷):

 

1.      베드로의φέντες” (아펜테스) : 결단으로서의단절과 포기

 

베드로가 사용한 형태는 주님을 따르기 위해 과거의 삶과단호하게 단절한 행위 뜻합니다.

 

생업과 안전망을 내려놓음: 마태복음 4 20절에서 베드로와 안드레가 부름을 받았을 "그물과 배를 버려두고(φέντες) 예수를 따르니라"라고 때와 똑같은 단어입니다.  베드로에게 '버림' 자신의 밥줄, 평생 쌓아온 경력, 삶의 안전망을 주님을 위해 '과감하게 끊어낸 영웅적 결단'이었습니다.

 

'내가 주체인' 버림: 베드로는 단어를 통해 자신이 주체가 되어 엄청난 대가를 지불했음을 강조합니다.  "주님, 보십시오. 저는 남들과 달리 소중한 삶의 기반을 단칼에 끊어내고(φέντες) 여기까지 사람입니다"라는 자부심이 묻어나는 표현입니다.

 

2.      예수님의φήκεν” (아페켄) : 목적이 있는위탁과 이양

 

예수님이 사용하신 형태는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가치 있는 (하나님 나라) 위해자신의 권리를 하나님께 양도하고 뒤에 남겨둔 행위 뜻합니다.

 

상실이 아닌 맡김(Release): 예수님이 단어를 쓰실 , '버리다' 뉘앙스는 '낭비나 손해' 아닙니다.  은행에 돈을 맡기거나 합법적으로 권리를 이양할 때처럼, 나의 가장 소중한 (, 아내, 형제, 부모, 자녀) 소유권을 하나님께 기꺼이 내어드리고(φήκεν) 자신은 청지기로서 떠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남겨둠: 예수님은 무책임하게 가족을 팽개치는 것을 칭찬하신 것이 아닙니다.  복음과 하나님 나라라는 ' 대의' 위해, 인간적인 집착과 통제권을 내려놓고 그들을 하나님의 손에 온전히 위탁한 사명의 길을 걸어간 성도들의 발걸음을 객관적인 사실로 인정하고 격려하시는 표현입니다.

 

묵상을 위한 핵심 요약

 

단어는 우리가 주님을 따를 일어나는 '버림'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1.      신앙의 시작 (아펜테스, φέντες): 우리는 베드로처럼 과거의 죄악된 습관, 세상적 안전망, 주님보다 사랑했던 것들을 단호하게 끊어내는 '결단' 버림이 필요합니다.

 

2.      신앙의 성숙 (아페켄, φήκεν):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버림은 나의 공로나 자랑이 아니라, 삶의 모든 주권을 하나님께 기꺼이 이양하고 맡기는 '위탁' 버림으로 성숙해져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렇게 주권을 이양한(φήκεν) 모든 영역에 현세와 내세의 풍성한 보상으로 채워주십니다(인터넷).

 

(i)                     여기서 저는 삶의 모든 주권을 하나님께 기꺼이 이양하고 맡기는 '위탁' 버림으로 성숙해져야 합니다라는 말을 자신에게 적용할 저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위탁' 버림을 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말씀하신 적용은 성경의 깊은 본질을 꿰뚫는 매우 성숙하고 아름다운 신앙적 결단입니다.  주님을 위해 소중한 사람들과 환경을 '방치하거나 버리는 ' 아니라, 그들의 소유권과 통제권을 하나님께 온전히 이양(φήκεν)하는 '위탁의 버림'으로 받아들이신 것은 참으로 복음적인 성찰입니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삶의 기반) 가족(아내, 형제, 부모, 자녀) 하나님께 진정으로 위탁할 , 우리의 삶과 관계 속에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영적 변화가 일어납니다.

 

1.      '(삶의 기반)' 위탁할 : 염려에서 청지기로

 

내가 집의 주인이 되어 힘으로만 가정을 지키고 미래를 보장하려 , 우리의 마음에는 불안과 염려가 찾아옵니다.

 

그러나 나의 집과 물질의 소유권을 하나님께 위탁하면, 나는 주님이 맡기신 가정을 관리하는 '거룩한 청지기' 됩니다.  이때부터 가정을 책임지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되시므로, 세상이 없는 참된 평안과 안전함을 누리게 됩니다.

 

2.      '가족(아내, 부모, 자녀)' 위탁할 : 집착에서 참된 사랑으로

 

우리는 흔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내나 부모, 특히 자녀의 인생을 뜻대로 통제하고 조종하려는 '우상화(집착)' 실수를 범하곤 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분노하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절망합니다.

 

가족을 하나님께 위탁한다는 것은, 그들의 진정한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손의 힘을 빼는 것입니다.  그들을 하나님의 손에 온전히 맡겨드릴 , 비로소 집착과 욕심이 걷히고, 주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있는 그대로 용납하고 축복하는 '참된 사랑' 시작됩니다.

 

3.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중심 잡기

 

위탁의 목적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나라(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 위해서입니다.

 

삶의 가장 소중한 영역들까지 하나님의 통치 아래로 기꺼이 밀려나게 ,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땅에서 믿음의 신령한 가족과 풍성한 은혜를 주시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의 완성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삶을 향한 작은 질문

소유권을 하나님께 양도합니다라는 고백이 오늘 삶의 구체적인 행동이 되기를 소망합니다”(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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