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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라며 영적 파산을 선언할 때, 하나님은 낙타 같은 죄인을 바늘귀로 통과시키시는 구원의 기적을 행하십니다.

  인간이 "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 라며 영적 파산을 선언할 때 ,  하나님은 낙타 같은 죄인을 바늘귀로 통과시키시는 구원의 기적을 행하십니다 .       “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듣는 자들이 이르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 누가복음 18:24-27).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8 장 24-27 절 말씀을 한국어 성경으로 읽은 후 헬라어 성경으로 읽을 때 제일 먼저 한국어 성경으로는 번역되지 않은 “ ὁ Ἰ ησο ῦ ς [περίλυπον γενόμενον]”( 호 이에수스 [ 페릴뤼폰 게노메논 ]) 라는 문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이 문자의 의미는 무엇이고 왜 한국어 성경책에는 번역되지 않은 것일까요 ?   1.       문장의 의미 분석   이 문장은 두 단어로 나뉘어 문자 그대로 다음과 같은 뜻을 가집니다 .   “ ὁ Ἰ ησο ῦ ς”( 호 이에수스 ): ' 예수께서 ' ( 주어 )   “περίλυπον γενόμενον”( 페릴뤼폰 게노메논 ): ' 매우 슬퍼하시며 ' 또는 ' 근심에 싸이신 채 ' ( 분사구문 )   “περίλυπος”( 페릴뤼포스 ) 는 ' 주위에 ' 를 뜻하는 ' 페리 (περί)' 와 ...

우리 모두가 다 주님께 죄를 범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인데 ...

우리 모두가 다 주님께 죄를 범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인데 ... 분명히 애굽 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그들의 주인인 애굽 왕에게 범죄를 했건만 그들이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요셉이 해석한 대로 술 맡은 관원장은 3 일째가 되던 날 바로 왕의 생일에 바로가 그의 전직을 회복시켜 다시 술을 따르게 한 반면 떡 굽는 관원장은 나무에 매달아 처형을 당한 것일까요 ? ( 창세기 40:1, 5-22, 현대인의 성경 )   왜 우리 모두가 다 왕 중의 왕이신 주님께 죄를 범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인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 화목케 ) 되었고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저주의 나무 ( 신명기 21:23; 갈라디아서 3:13) 에 못 박혀 처형을 당하신 것일까요 ?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서로 다른 꿈을 꾼 애굽 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을 본 요셉은 그들이 수심에 잠겨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   그래서 그들에게 " 오늘은 어째서 그처럼 수심에 잠겨 있습니까 ?" 라고 물었습니다 .   그 이유는 그들은 꿈을 꾸었으나 해몽해 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창세기 40:5-8, 현대인의 성경 ).   한나도 너무 마음이 괴로워서 수심에 싸여 있었고 ( 사무엘 상 1:15, 18, 현대인의 성경 ), 암논도 이복 동생 다말을 몹시 사랑하여 날마다 수심에 잠겨 있었으며 ( 사무엘 하 13:1-4, 현대인의 성경 ) 느헤미야 또한 예루살렘의 형편을 듣고 아닥사스다 왕 앞에서 수심이 가득했었습니다 .   그 때 아닥사스다 왕은 병이 없는 느헤미야에게 수심이 가득한 이유가 "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 라고 말했습니다 ( 느헤미야 1:2-3, 2:1-2, 현대인의 성경 ).   우리 마음은 근심으로 편치 못하여 탄식할 수 있습니다 ( 시편 55:2, 현대인의 성경 ).   또한 우리는 근심으로 시력이 약해지고 우리 몸과 영혼이 쇠약해질 수 있습니다 ( 시편 31:9, 현대인의 성경 ).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며 ( 잠언 15:13) 또한 뼈를 마르게 합니다 (17:22, 현대인의 성경 ).   그리고 위로 받지 못하는 근심은 우리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 예레미야 8:18).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주님께서 우리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닙니다 ( 예레미야 애가 3:33).   그리고 비록 주님께서 우리를 근심하게 하셔도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32 절 , 새 번역 ).   이 주님께서 오늘 근심하고 있는 우리에게 "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

만남은 우연이 아닙니다.

만남은 우연이 아닙니다.   만남은 우연이 아닙니다 .   요셉은 죄도 짓지 않았는데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혔습니다 ( 창 39:19-23).   그리고 그는 거기서 애굽 왕 바로에게 범죄한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을 만났습니다 (40:1-4).   이렇게 죄지은 사람들과 죄짓지 않은 요셉이 옥에서 만난게 우연이었을까요 ?   결코 아닙니다 .   주권적인 하나님의 뜻안에  그 때 그 곳에서 그들을 서로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   그 목적은 하나님께서는 요셉으로 하여금 그들의 꿈을 해석하게 하시사 (12-15 절 )  술 맡은 관원장이 전직을 회복케 하시므로 (21 절 )  결국에는 요셉을 옥에서 건지셨을 뿐만 아니라  요셉으로 하여금 바로 왕의 꿈도 옳게 해석케 하시므로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습니다 (41 장 ).   우리의 만남은 우리가 보기에 않좋은 상황에서 이루어 질 수도 있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않좋은 상황에서도 우리가 원치않고 기대하지 않았던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도 이루실 수가 있으십니다 .   하나님께서는 않좋은 상황에서도  좋은 만남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사  구원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