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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나심 (3) (행1:1-11; 요 1:14)

  https://youtu.be/8e-p8Z7cz7k?si=sYuVaucDaPQyhcvw

칭의의 은혜를 입은 성도의 심령 깊은 곳에서는 주체할 수 없는 생명의 샘이 솟구치기에, 터져 나오는 감격 속에서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칭의의 은혜를 입은 성도의 심령 깊은 곳에서는 주체할 없는 생명의 샘이 솟구치기에, 터져 나오는 감격 속에서 기뻐하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감람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무리가 자기들이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무리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9:37-40).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9 37-40 말씀을 한국어 성경과 헬라어 성경으로 읽었을 제일 먼저 궁금해진 것은 제자의 무리”[παν τ πλθος τν μαθητν(하판 플레도스 마데톤)] 모든 능한 ”[δυνάμεων(뒤나메온)](37) 무엇인가 였습니다.

 

(a)   누가복음 19 37절에서 제자들이 기뻐하며 찬양했던 이유인 "자신들이 모든 능한 [δυνάμεων(뒤나메온)]"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 누가복음의 전체 맥락과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인공지능이 정리한 것입니다(인터넷):

 

1.      직전의 사건: 바디매오의 치유와 삭개오 변화 (누가복음 18~19)

 

예수님과 제자들은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여정' 중에 있습니다.  제자들의 기억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던 최근의 기적들은 여리고를 지나오며 일어난 일들입니다.

 

맹인 바디매오를 고치신 사건( 18:35-43): 예루살렘에 진입하기 직전, 길가에서 구걸하던 맹인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이때도 백성이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세리장 삭개오의 변화( 19:1-10): 비록 물리적인 치유 기적은 아니지만, 완악했던 세리장이 회개하고 재산을 나누는 '영적이고 도덕적인 기적(능한 )' 제자들이 곁에서 직접 목격했습니다.

 

2.      예루살렘 여정 전체에 나타난 표적들 (누가복음 9~18)

 

누가복음은 9 51절부터 19 27절까지 분량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여정(Travel Narrative)' 할애합니다.   위에서 제자들은 수많은 능한 일을 보았습니다.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심( 9:37-43)

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심 ( 11:14)

안식일에 18 동안 꼬부라져 앓던 여인을 고치심 ( 13:10-17)

안식일에 수종병 사람을 고치심 ( 14:1-6)

나병환자 10명을 깨끗하게 하심 ( 17:11-19)

 

제자들은 수개월간의 여정 동안 예수님의 권능을 누적해서 목격해 왔고, 감격이 예루살렘 입구(감람산 내리막길) 도달하자 폭발한 것입니다.

 

3.      요한복음과의 병행 구절로 보는 배경: '나사로의 부활'

 

누가복음 본문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복음서 전체의 연대기적 맥락(특히 요한복음 12) 함께 보면 가장 결정적인 "능한 " 하나 등장합니다.

 

베다니의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 11, 12:17-18): 예수님이 예루살렘 바로 동네인 베다니에서 죽은 나흘이나 나사로를 살리셨을 , 수많은 무리가 표적을 보았습니다.

 

요한복음 12 18절은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표적(나사로를 살리신 )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명시합니다.  , 감람산 길목에서 소리치던 무리 상당수는 나사로가 살아난 엄청난 권능(뒤나미스) 직접 보았거나 전해 들은 상태였습니다.

 

요약하자면,

제자들이 소리 높여 찬양한 "모든 능한 (δυνάμεων)" 어느 가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맹인의 눈을 뜨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신최근의 폭발적인 기적들과, 갈릴리에서부터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곁에서 보아온예수님의 모든 치유와 축귀의 권능들이 총체적으로 결합된 것입니다.  이제 권능을 가진 왕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니, 제자들은 메시아의 나라가 임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찬양을 멈출 없었던 것입니다(인터넷).

 

(i)                  여기서 드는 질문은, 제자들이 기대하고 있었던 임할 메시아의 나라는 무엇인가 입니다.

 

·         제자들이 그토록 열광하며 기대했던 메시아의 나라는 영적이거나 내세적인 나라가 아닌, 매우 현실적이고 정치적이며 민족적인 지상 낙원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9 전체의 흐름과 당시 역사적 배경(로마 압제기) 통해 제자들이 머릿속에 그리던 메시아 나라의 구체적인 특징을 인공지능이 3가지로 정리한 것입니다(인터넷):

 

a.      로마 제국으로부터의 정치적 해방 (독립 국가)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 제국의 식민 지배를 받으며 과도한 세금과 종교적 모독으로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기대한 메시아는 강력한 군사적·정치적 힘을 가진 왕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면 로마 군대를 축출하고, 유대의 주권을 회복하며, 다윗 왕조의 영광을 재현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38절에서 그들이 예수님을 향해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βασιλεύς(바실레우스)]이여"라고 외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b.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하나님 나라의 도래

 

제자들은 메시아 나라가 '지금 당장' 눈앞에 펼쳐질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생각은 누가복음 19 전반부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시자, 무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παραχρμα(파라크레마)] 나타날 줄로 생각"했습니다(11).  여기서 제자들은 로마가 무너지고 영광스러운 메시아의 지상 낙원이 '아무런 시간적 지체 없이 바로 순간 당장' 눈앞에 펼쳐질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제자들은 감람산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바로 순간이 역사의 대전환점이자, 메시아의 통치가 즉시 시작되는 순간이라고 판단했기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c.      경제적 번영과 사회적 신분 상승

 

제자들에게 메시아 나라는 현실적인 보상이 주어지는 구조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왕위에 오르면 자신들이 나라의 핵심 관직을 차지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실제로 복음서 곳곳에서 제자들은 "우리 누가 가장 높은가" 두고 끊임없이 다투었습니다(9:46, 22:24).

 

그들이 생각한 메시아 나라는 억압받던 유대인이 지배 계층이 되고, 굶주림과 가난이 해결되는 물질적 번영의 나라였습니다.

 

결론: 제자들의 오해와 예수님의 눈물

 

결국 제자들이 기대한 나라는 ' 세상에 속한 힘의 나라'였던 반면, 예수님이 세우고자 하신 나라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죄와 사망을 이기는 '하나님 중심의 영적인 나라'였습니다.

 

극명한 시각 차이 때문에, 제자들은 기뻐 외쳤으나 예수님은 곧이어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며 눈물을 흘리시게 됩니다(19:41).

 

(2)   둘째로,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9 38 말씀에서 3개의 문장에 대해 구체적인 의미를 알고 싶어졌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  하늘에는 평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

 

(a)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 βασιλεύς ν νόματι Κυρίου( 바실레우스 오노마티 퀴리우)]:

 

표현은 구약 성경의 예언, 유대인들의 메시아 대망 사상, 그리고 누가복음의 독특한 신학이 집약된 공식적인 메시아 등극 선언입니다.  구체적인 신학적, 역사적 의미를 인공지느이 3가지로 나누어 명확히 정리한 것입니다(인터넷):

 

1.      구약 시편 118편의 성취: '여호와의 대리자'

 

고백은 유대인들이 유월절 같은 절기 성전으로 올라가며 부르던 찬송시인 시편 118 26("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직접 인용한 것입니다.

 

'주의 이름으로(ν νόματι Κυρίου)' 온다는 것은,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야훼) 권세와 전권을 위임받아 파송된 '하나님의 합법적인 대리자'라는 뜻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단순한 종교적 스승을 넘어, 구약 성경이 수천 동안 예언해 '약속된 메시아' 마침내 도착했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2.      누가복음의 의도적 강조: "( βασιλεύς)" 삽입

 

마태복음, 마가복음 다른 복음서의 병행 구절을 보면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혹은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복음은 여기에 "”[ βασιλεύς( 바실레우스)]이라는 단어를 명확하게 집어넣었습니다.

 

당시 ''이라는 칭호는 오직 로마의 황제(카이사르)에게만 허락된 절대적인 단어였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향해 ""이라고 외친 것은, 현재 유대를 지배하고 있는 로마 황제의 통치를 거부하고 "하나님이 세우신 진짜 왕이 오셨으니, 이제 세상의 권력 지도가 바뀔 "이라는 강력한 정치적·종교적 선언이었습니다.

 

3.      스가랴 9 9절과의 연결: '겸손한 ' 역설

 

제자들은 로마를 무찌를 강력한 군사적 군주를 기대하며 타이틀을 외쳤지만, 예수님은 타이틀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취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군마() 아니라 '새끼 나귀'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이는 "보라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라는 스가랴 9 9절의 예언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 타이틀은 ""이었으나, 왕은 칼과 창으로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어 평화를 이루는 '종의 모습을 '이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제자들의 입에서 나온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하나님의 전권을 부여받아 로마를 무찌르고 다윗의 왕조를 재건할 메시아 "이라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편에서의 진짜 의미는 "칼이 아닌 십자가의 사랑으로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고 참된 하나님의 통치를 시작할 영적인 "이었습니다.  단어는 같았지만, 제자들과 예수님이 바라본 왕의 성격은 완전히 달랐던 것입니다(인터넷).

 

(b)   하늘에는 평화”[ν οραν ερήνη( 우라노 에이레네)]:

 

선언은 예수님의 탄생 천사들이 불렀던 찬송과 깊은 대조를 이루며,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방식의 대전환을 보여주는 선언입니다.  누가복음 2 14절의 천사 찬송(“땅에서는 평화”) 비교하여 구절이 가진 구체적인 의미를 인공지능이 3가지로 정리한 것입니다(인터넷):

 

1.      예수님 탄생 찬송( 2:14)과의 대조와 성취

 

누가복음의 시작과 끝자락에 나오는 찬송을 비교하면 구속사의 거대한 흐름이 보입니다.

 

예수 탄생(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예수 입성 ( 19:38):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늘에는 평화요"

 

예수님이 아기로 땅에 오셨을 때는 하늘의 평화가 ''으로 내려오는 시작점(초림)이었습니다.  반면, 이제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을 향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시점에는 평화가 하늘에서 완전히 확정되고 완성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던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 하늘과 땅의 근원적인 화해(평화) 이루어졌다는 의미입니다.

 

2.      하나님 법정에서의 '우주적 평화' 확정

 

헬라어 개념에서 '하늘에 평화가 있다' 것은 단순히 구름 세상이 평화롭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하늘은 하나님의 어전 회의와 법정이 있는 곳입니다.

 

예수 메시아 왕의 대속 사역을 통해, 인간을 고발하던 사탄의 권세가 꺾이고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었습니다.

 

, 하나님의 법정(하늘)에서 인간을 향한 진노가 거두어지고 "이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영원한 화평(평화) 선언되었다" 영적·우주적 승리의 선포입니다.

 

3.      제자들의 '정치적 오해' 역설

 

제자들은 찬송을 부를 여전히 현실적인 평화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생각한 평화는 로마의 압제와 군사적 위협이 사라진 상태인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 유대인 버전이었습니다.  "하늘이 도우셔서 우리에게 평화가 임했다!"라는 승리감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백 뒤에 예루살렘 성을 보며 우시며 말씀하십니다: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눈에 숨겨졌도다"( 19:42).

 

제자들은 '정치적 평화' 노래했지만, 구절의 진짜 의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주실 '하나님과의 영적인 화평'이었습니다.

 

요약하자면,

하늘에는 평화 메시아 왕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진노가 풀리고, 하늘 법정에서 인간과의 영원한 화해와 화평이 최종 승인되었다는 구속사적 선언입니다.  제자들은 정치적 승리를 생각하며 외쳤으나, 하나님은 인류를 향한 십자가의 영적 평화를 준비하고 계셨던 역설이 담겨 있습니다(인터넷).

 

(c)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δόξα ν ψίστοις(독사 훞시스토이스)]:

 

선언은 메시아의 예루살렘 입성이 지닌 천상적 가치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최종 정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거대한 찬양입니다.  표현 역시 누가복음 2 14절의 천사 찬송과 짝을 이루며 다음과 같은 3가지 구체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인터넷):

 

1.      하나님의 구원 역사(Exodus) 최종 완성에 대한 찬양

 

헬라어 ‘δόξα(독사)’ 하나님의 임재, 광채, 그리고 그분의 본질적인 위엄과 명예를 뜻합니다.  또한ψίστοις(훞시스토이스)’ 복수형 어미로 '가장 높은 차원의 하늘들(the highest heavens)'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목적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위함입니다.  누가는 이를 예수님의 '별세(Exodus/떠나심)'라고 표현했습니다 ( 9:31).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거대한 드라마가 이제 최종 막을 내리기 직전이므로, 우주의 가장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 그분의 지혜와 공의, 사랑에 대한 최고의 찬사와 영광이 돌려 마땅하다는 선언입니다.

 

2.      땅의 비천함과 하늘의 지고함의 연결

 

예수님은 지금 화려한 백마가 아니라, 먼지가 날리는 위에서 초라한 새끼 나귀를 타고 내리막길을 내려가고 계십니다.  인간의 눈으로 때는 지극히 낮고 비천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비천한 순종의 걸음이, 역설적으로 가장 높은 하늘(ν ψίστοις) 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우주에 가장 밝게 드러내는 순간이라는 점을 찬양이 보여줍니다.

 

인간 세상의 영광(로마 황제의 왕관 ) 가짜이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로 나아가는 메시아의 발걸음만이 하늘 법정에서 인정받는 참된 영광이라는 영적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3.      '예수 탄생' '예수 입성' 수미상관(Chiasmus) 완성

 

누가복음 2 14절에서 천사들은 예수님이 땅에 태어나실 찬양을 시작했습니다.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로다"

19:38: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아기 예수님이 땅에 오셨을 때는 하늘의 찬양이 땅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이제 사역을 마치고 하늘로 돌아가실 준비를 하는 입성의 순간에는, 땅에 있던 제자들이 찬양을 받아 다시 하늘의 하나님을 향해 영광을 올려드리는 아름다운 구속사적 응답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 새끼 나귀를 타고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시는 예수님의 낮아지심이, 도리어 우주에서 가장 높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명예와 구원 계획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빛내는 최고의 영광이라는 신앙적 선포입니다(인터넷).

 

(3)   셋째로, 제자의 무리가 기뻐하며 소리로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하였을 ( 가지 찬양: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 하늘의 평화, 가장 높은 곳의 영광)(19:37-38) “무리 어떤 바리새인들 예수님에게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Διδάσκαλε, πιτίμησον τος μαθητας σου(디다스칼레 에피티메손 토이스 마데타이스 )](39)라고 말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은 찬양을 듣고 분노하며 "제자들을 책망하소서"라고 말한 것일까요?

 

(a)   바리새인들이 분노하고 두려워한 2가지 배경: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의 찬양을 강제로 멈추라고 요구한 데에는 종교적 이유와 정치적 이유가 동시에 작용했습니다.

 

     종교적 배경: "신성모독(Blasphemy)"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

 

제자들이 외친 찬송(38) 구약 시편 118편을 인용한 공식적인 메시아 등극 선언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눈에 예수님은 갈릴리 출신의 랍비일 뿐이었습니다.

 

그런 인물에게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메시아)"이라는 신성한 호칭을 붙여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참람한 신성모독이자 이단적 행위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 아닌 '선생님[Διδάσκαλε(디다스칼레)]이라는 낮은 호칭으로 부르며 선을 그은 것입니다.

 

     정치적 배경: 로마 제국의 "피의 숙청(민란 진압)" 대한 공포

 

당시는 유대 최대의 명절인 유월절 직전이었습니다.

 

세계에서 수백만 명의 유대인이 예루살렘으로 몰려들었고,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민란(폭동) 감시하기 위해 군대를 증원해 서슬 퍼런 감시를 펴고 있었습니다.

 

이런 예민한 시기에 예루살렘 바로 턱밑(감람산 내리막길)에서 군중들이 대규모로 모여 "로마 황제가 아닌 새로운 '' 오셨다!" 시위하듯 외치는 모습은 로마 군대를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대로 두었다가 로마 군대가 출동하여 제자들은 물론 예루살렘 시민 전체를 학살하는 피바람이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습니다(실제로 요한복음 11:48에서 그들은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걱정했습니다)(인터넷).

 

(i)                  저는 바리새인들이 분노하고 두려워한 2가지 배경을 묵상할 우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불신앙은 충분히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만들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통해 불신앙이 어떻게 두려움을 낳는지 가지 차원으로 깊이 나누어 있습니다(인터넷):

 

a.      진짜 왕을 알아보지 못할 오는 '세상 권력에 대한 두려움'

 

바리새인들이 로마 군대의 칼날을 두려워했던 이유는 우주와 역사를 주관하시는 만왕의 예수 그리스도가 눈앞에 계심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니, 당장 눈앞에 보이는 로마의 정치적 권력과 군사력(빌라도와 황제) 세상에서 가장 보였던 것입니다.

 

불신앙은 인간의 눈을 어둡게 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권세보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위협을 두려워하게 만듭니다.

 

b.     하나님의 의를 믿지 못할 오는 '자기 보호(안정) 두려움'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쌓아 올린 종교적 시스템과 기득권, 그리고 예루살렘의 평화라는 안락망이 깨질까 두려워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믿었다면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그분을 따랐겠지만, 불신앙은 "내가 삶을 지켜야 한다" 강박을 낳습니다.

 

결과,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화 대신 내가 구축한 가짜 평화를 지키기 위해 메시아의 등극마저 가로막으려는 어리석은 두려움에 빠지게 것입니다.

 

c.      "만일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40) 위로

 

그래서 바리새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40 대답은 불신앙의 두려움에 갇힌 자들을 향한 거대한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그분의 영광은 인간의 두려움, 정치가들의 계산, 군대의 위협 때문에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두려워 입을 닫아도 하나님은 길가의 돌들을 들어서라도 반드시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두려움 때문에 제자들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었기에 로마의 위협 앞에서도 기뻐 외칠 있었습니다.  결국 참된 믿음만이 세상을 향한 모든 두려움을 내쫓는 유일한 열쇠임을 본문이 극명하게 보여줍니다(인터넷).

 

(4)   마지막 넷째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만일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ν οτοι σιωπήσουσιν, ο λίθοι κράξουσιν(에안 후토이 시오페수신 호이 리도이 크락수신)](19:40)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1.      구약 성경의 배경: 심판과 고발의 부르짖음 (하박국 2 11)

 

유대 성경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말씀을 하셨을 구약 하박국 2 11절의 말씀을 즉각 떠올렸을 것입니다: "담에서 돌이 부르짖고[κράξει, 70인역 헬라어 동일 단어] 집에서 들보가 응답하리라."

 

구약에서 '돌들이 부르짖는다' 것은 불의와 악독,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자들을 향한 피조물들의 '고발과 심판의 외침' 뜻합니다.

 

, 만약 제자들이 메시아를 보고도 침묵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거부하는 거대한 죄악이 되므로, 길가의 돌들이 일어나 불신앙을 고발하고 심판을 외칠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입니다.

 

2.      피조물의 영적 해방과 우주적 찬양 (로마서 8)

 

여기서 소리 지른다는 단어 ‘κράξουσιν(크락수신)’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산고를 겪는 여인의 비명이나 간절한 부르짖음을 뜻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 22절에서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했습니다.

 

만물은 메시아가 오셔서 땅의 저주를 풀고 하나님의 통치를 회복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만약 인간이 두려움 때문에 찬양의 입을 닫아버린다면, 메시아의 입성을 고대하던 자연 만물(돌들) 기쁨과 감격을 참지 못해 소리 지르며 찬양할 것이라는 우주적 선포입니다.

 

3.      유대인의 불신앙과 이방인 구원의 예언 (구속사적 전환)

 

세례 요한은 마태복음 3 9절에서 바리새인들을 향해 "하나님이 능히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경고한 있습니다.   맥락에서 '돌들' 영적으로 죽어 있고 무가치하게 여겨지던 존재들, '이방인들' 상징합니다.

 

혈통적 유대인(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제자들의 입을 막아 침묵하게 만든다면, 하나님은 돌처럼 취급받던 이방인들을 일으켜 메시아를 왕으로 부르짖고 찬양하게 만드실 것이라는 구속사의 대전환을 암시합니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유대인들이 침묵했을 , 세계의 이방인들이 일어나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요약하자면,

말씀은 바리새인들의 두려움과 세상 권력의 위협(로마 군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결코 가로막을 없다는 절대적인 주권 선포입니다.

 

인간이 두려워 침묵할지라도 하나님은 생명 없는 돌들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고야 마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구절은 불신앙의 두려움에 갇힌 자들에게는 무서운 심판의 경고가 되지만, 왕이신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어떤 위협 속에서도 소리 높여 찬양할 있게 하는 거대한 영적 위로와 확신이 됩니다(인터넷).

 

(a)   여기서 저는 능히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있으신 하나님(3:9)께서 돌들로도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터져 나오는 감격을 참지 못해 비명을 지르듯 메시아를 찬양할 [κράξουσιν(크락수신)]이라(19:40) 말씀하신 것을 묵상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인해 죄사함과 의롭다하심(칭의) 얻은 구원받은 우리로 하여금 결코 침묵하게 두지 않으시고 터저 나오는 감격속에서 기뻐하며 소리를 하나님을 찬양케 하신다고 믿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다시 오시는(재림/강림) 중의 왕이시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a.      같은 우리를 살리신 은혜의 폭발

 

우리는 본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영적으로 아무 생명 없는길가의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던 우리를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피로 씻기시고, 성령으로 살리셔서 아브라함의 자손(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셨습니다.

 

생명 없는 돌이 소리를 지르는 것이 초자연적인 기적이듯, 죄인이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구원의 감격을 참지 못해 터뜨리는 찬양은 세상이 막을 없는 가장 위대한 영적 기적입니다.

 

b.     결코 침묵할 없는구원의 감격

 

예수님은 은혜를 입은 자들을 결코 침묵 속에 가두어두지 않으십니다.  세상의 환경이 우리를 억누르고 바리새인과 같은 영적 방해가 찬양을 막으려 할지라도,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는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칭의의 은혜를 입은 성도의 심령 깊은 곳에서는 주체할 없는 생명의 샘이 솟구치기에, 터져 나오는 감격 속에서 기뻐하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c.      다시 오실 왕을 향한 마라나타(Maranatha) 찬송

 

초림의 예수님을 향해 제자들이 외쳤던 찬양은, 이제 십자가와 부활을 통과한 오늘날의 교회를 통해 다시 오실 만왕의 왕을 향한 재림의 찬양으로 완성됩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다시 오시는 중의 왕이시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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