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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22)

                    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22)       데마의 이탈과 마가의 이탈은 바울의 선교 사역 중 일어난 대표적인 두 가지 중도 하차 사건입니다 .   그러나 두 사람의 동기 , 성격 , 그리고 최종 결과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습니 다 :   (1)   이탈의 동기와 성격 : 데마 : 세상에 대한 미련과 유혹 때문에 믿음 자체를 저버린 영적 변절입니다 .   마가 : 전도 여행의 육체적 고충이나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사역적 미숙함 이었습니다 .   신앙을 버린 것이 아니라 감당하기 힘든 현실 앞에 무너진 것입니다 .   (2)   이탈의 타이밍과 상황 : 데마 :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순교를 직전에 둔 가장 고독하고 위험한 시기에 바울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 마가 : 사역 초기 제 1 차 전도 여행 중 떠났습니다 .   (3)   바울 선교팀에 미친 영향 : 데마 : 바울에게 큰 인간적 , 영적 배신감을 안겨주었습니다 . 마가 : 제 2 차 전도 여행을 준비할 때 , 마가를 다시 데려갈 것인가를 두고 바울과 바나바가 심하게 다투어 결국 선교팀이 둘로 갈라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4)   최종 결과와 영적 교훈 : 데마 : 세상으로 돌아간 실패자의 전형으로 남았습니다 . 마가 : 바나바의 양육과 베드로의 지도를 받으며 영적으로 크게 성장했습니다 . 결국 바울은 죽기 직전 "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 며 그를 최고의 동역자로 인정했고 , 마가는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을 기록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   데마는 세상을 사랑...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보라! 용광로의 불과 같은 심판의 날이 올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보라!  용광로의 불과 같은 심판의 날이 올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 “' 보라 !   용광로의 불과 같은 심판의 날이 올 것이다 .   그 날에는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가 다 지푸라기처럼 타서 없어질 것이며 그들 중에는 하나도 살아 남는 자가 없을 것이다 ”( 말라기 4:1, 현대인의 성경 ).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 전도 대상자들을 구원해주시사 그 놀라운 구원을 목격하는 모든 사람들도 구원해 주시길 기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   전도   대상자들을   구원해주시사   그   놀라운   구원을   목격하는   모든   사람들도   구원해   주시길   기원합니다 . 느부갓네살 왕은 이렇게 명령했습니다 ( 조소를 내렸습니다 ): “ 어떤 민족이나 백성을 막론하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에 대하여 좋지 않게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 몸을 갈기갈기 찢고 그의 집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려라 .   이런 방법으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신은 천하에 없다 ”( 다니엘 3:29, 현대인의 성경 ).   자기가 세운 “ 금 신상에게 절하십시오 .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않는 사람은 즉시 뜨겁게 타는 용광로에 던져질 것입니다 ”(5-6 절 , 현대인의 성경 ) 라고 명령했었던 느부갓네살 왕이 이젠 “ 어떤 민족이나 백성을 막론하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에 대하여 좋지 않게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 몸을 갈기갈기 찢고 그의 집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려라 ” 고 명령했습니다 (29 절 , 현대인의 성경 ).   그 이유는 그는 하나님께서 놀라운 방법으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구원하신 것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 전도 대상자들을 구원해주시사 그 놀라운 구원을 목격하는 모든 사람들도 구원해 주시길 기원합니다 .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적인 구원입니까!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적인   구원입니까 !   느부갓네살 왕의 입장에서는 “ 우리가 묶어서 불에 던진 자는 세명이 ” 었는데 “ 네 사람이 불 가운데 걸어다니고 있 ” 는 모습을 보고 당연히 “ 깜짝 놀 ” 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   뿐만 아니라 그가 더욱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네 사람들이 “ 묶여 있지도 않고 상한 흔적도 없 ” 었다는 것입니다 .   그런데 제 생각엔 느부갓네살 왕이 제일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 네 번째 사람은 그 모습이 신들의 아들과 같 ” 았다는 것입니다 ( 다니엘 3:24-25, 현대인의 성경 ).   이것이 바로 두 번째 하나님의 구원이라 생각합니다 .   “ 뜨겁게 타는 용광로 속에 ” 던져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죽지 았을 뿐만 아니라 그 용광로 속에서 걸어다니고 있었고 또한 그들은 묶여 있지도 않고 상한 흔적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적인 구원입니까 !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심에 있어서 큰 핍박과 위기를 통해서도 우리에게 “ 묶여 있 ” 는 모든 것을 다 풀어주시사 우리를 자유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  

이것이 제일 첫 번째 하나님의 구원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제일   첫   번째   하나님의   구원이라   생각합니다 .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말을 들은 느부갓네살 왕은 “ 잔뜩 화가 ” 나서 “ 평소 때보다 용광로의 불을 7 배나 더 뜨겁게 하라고 지시 ” 하고 “ 또 건장한 군인 몇 사람에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단단히 묶어 뜨겁게 타는 용광로 속에 던져 넣으라고 명령 ” 했습니다 .   그 결과 “ 이 세 사람은 꽁꽁 묶인 채 뜨겁게 타는 용광로 속에 떨어졌 ” 습니다 ( 다니엘 3:19-23, 현대인의 성경 ).   그리했을 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그 “ 건장한 군인 몇 사람 ” 들이 “ 그 불길에 타서 죽 ” 은 것처럼 (22 절 , 현대인의 성경 ) 그들도 그 불길에 타서 죽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   그런데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그 불길에 타서 죽지 않았습니다 .   이것이 제일 첫 번째 하나님의 구원이라 생각합니다 .   그런데 만이 그들이 그 불길에 타서 죽었다면 과연 그것도 하나님의 구원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   아니면 ,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인가요 ?